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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집회활동을 둘러싼 학교와 학생들간의 마찰이 커다란 논란의 대상이 돼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최근에
발행된 『한림학보』가 이 문제를 연속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학생집회를 둘러싼 쟁점들은 두 번씩이나 연속해서 1면
톱기사의 자리를 차지했으며, 대학 구성원의 각계각층이 여론 및 제언 등을 통해 이 문제에 관심을 내보였다. 그리고 이 문제와 관련, 4명의
학생회 간부가 학생지도위원회로부터 징계 처분을 받았다. 학생 집회활동을 둘러싼 갈등은 집회장소의 선정 문제에서 비롯되며, 그 중에서도 특히
중앙관 앞 광장의 사용 여부가 논란의 초점이 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갈등의 한쪽 당사자인 학교측의 주장은 단순명백하다. 중앙관 앞 광장은
강의실과 실험실 그리고 교수의 연구실이 밀집돼 있는 곳이어서 대학의 핵심 기능인 강의와 연구를 보호하기 위해 결코 집회허가를 내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갈등의 다른 한쪽인 학생회측의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대학은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장소인데, 민주사회에서는 집회의 자유가 보장돼 있으니 학생들의 집회는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막아서는 안된다. 둘째 중앙관 앞 광장은 설계
당시부터 학생들의 집회공간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셋째 교수들의 연구활동 때문에 학생들이 누려야 할 권리가 무시돼서는 안된다. 넷째 학교의 지정
집회장소인 학생회관 앞 야외무대는 집회장소로서는 너무 협소할 뿐 아니라 애초에 학생대표와 합의 없이 만들어졌다. 다섯째 현행 규정에 의하면
학생들의 집회는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돼 있다.
대자보와 『한림학보』의 여론란 등을 통해 표명된 상기 주장들 중 앞의 세 가지는 그것을 말한 사람의 지성과 양식을 의심케 하는
내용이다. 첫번째 주장은 민주사회에서의 자유란 어디까지나 타인의 자유와 공공질서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자유라는 것을 잊고 있는
발언이다. 공부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귀에다 대고 꽹과리를 치고 확성기를 틀어대는 것이 결코 학문의 전당에서 실천할 자유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주장은 중앙관 앞 광장의 설계를 맡았던 사람을 무식꾼으로 몰아붙이는 발언이다. 무지몽매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강의실과
연구실이 밀집해 있는 곳에다 집회장소를 설계할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세 번째 주장에 대해서는 ‘학과별 노래자랑’, ‘학과별 게임’(9월23일의 사회인의 날 프로그램 내용) 등의 행사가 교수들의
연구를 방해해 가면서까지 꼭 주어야할 학생들의 권리인가라고 묻고싶다. 학생들의 주장들 중 뒤의 두 가지는 진상을 잘 모르고 하는 말 같아서
학생처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이 기회에 알려 주고자 한다. 우선 학생회관 앞 야외무대가 집회장소로써 좁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렇게 묻고 싶다.
중앙관 앞 광장에서 학생들이 강행했던 행사에 참석했던 인원이 야외무대 마당을 반이라도 채울 만큼 많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우리학교에 대규모
행사를 치를 공간이 없다면 2만명 이상의 청중이 운집한 지난 번 ‘청소년 음악회’는 학외에서 거행됐단 말인가?
학생회관 앞 마당이 학생대표들과 합의 없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본인이 학생처장 재임시 학생집회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 인용문이 그 진위를 밝혀 줄 것이다. “학생준수규정 제13조(집회신고): 학생단체가 학내·외에서 집회를 하고자 할 때에는
집회신고서(지정양식)를 집회 예정 5일 전까지 학생처에 제출해 학생처장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19세기 영국의 비평가 매슈 아놀드는 그의 명저
『교양과 무질서』에서 교양을 ‘허심탄회한 지성’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여기서 아놀드가 말하는 허심탄회함이란 자신의 주장이나 이익을 관철시기
위해 사실을 왜곡시키지 않는 정신적 특질을 말한다.
『한림학보』에 학생회측의 입장을 밝히는 글을 쓴 한 학생은 자신들이 중앙관 앞 광장을 집회의 장소로 고집하는 이유는 당당히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 교수들의 연구와 대학원의 수업에 폐를 끼친 데 대해 사죄 드린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의 관철에 정신이 팔려서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의 모순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은 어찌보면 학생활동에 열정을 쏟고 있는
학생들이 작금에 처해 있는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 대학생들의 학생활동은 많은 문제점에 봉착해 있고, 따라서 어떤 전환점을 모색해야 할 단계에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생활동이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결과 일반학생들의 참여율이 점점 저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환점은 물의를
일으킬 장소를 상징화해 그곳에서 집회를 여는 정도의 행동으로는 결코 담보되어지지 않는다. 위기의 원인은 언제나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용서를 빌어야 할 일을 저지르는 일에 연연해 할 것이 아니라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내부를 돌아보는 일이다.
/ 김재환 (영어영문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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