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간다. 학사 일정이 노루 꼬리만큼 남았을 뿐이다. 세밑이면 이런저런 연유로 마음이 스산해지기 쉬운데, 올해는 그런 기분에 잠시 탐닉하는 것조차 사치가 아닌가 싶다. 불황에 허덕이는 많은 이들의 고단한 숨소리가 귓전을 맴돌고 정치권을 진원으로 한 사회적 갈등과 분열의 골이 눈에 선하게 잡히는 탓이다. 거기에 더하여 최근의 수능 부정 사태는 우리를 한없이 슬프고 부끄럽게 한다. 부정과 부패가 정치권과 성인세계의 전유물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건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가 부모의 거울이듯 학생은 선생의 거울인 것이다. 밖에서 우리나라를 부패 공화국이라 한들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으랴.  

  우리 대학의 현주소는 어떤가? 지난 주 한림학보 1면에 실린 학생회 선거 유세 사진은 우리 자화상의 한 단면을 시리디 시리게 확인시켜 주었다. 학생회 선거의 썰렁함은 전국적인 현상이고 또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청중 보다 운동원의 수가 훨씬 많았던 그 광경은 보는 이의 어깨를 오그라들게 하기에 족했다. 학생 사회의 이런 모습이 교수들과 학교 당국의 엇비슷한 행태를 닮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학생처와 학생회 사이의 경색된 관계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웬만하면 툴툴 털고 서로 손을 잡을 수 있으련만 그러기엔 평소에 쌓은 교감과 신뢰의 켜가 원체 얕았던 모양이다. 총장의 새 보직자 인선을 두고 학교 당국과 교수 평의회 사이에도 긴장이 흐르고 있다. 이 사안이 소모적인 기 싸움으로 전개된다면 학생처, 학생회 상황의 재판이 될 것이다. 더구나 사태의 귀추를 학생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양측 모두 유념해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훈계하여 이르는 백 마디 말보다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본다.

    여하튼 한림 공동체의 이런 정황들은 구성원들 간의 상호 신뢰와 배려에 심상치 않은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음울한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누가 먼저 나서야 할 것인가? 모두가 한 배에 타고 있음을 재확인하고 서로를 믿고 아끼는 마음을 보여야 한다. The University That Cares라는 우리 대학의 홍보 문구는 대외 홍보용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참 모습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Mighty Hallym의 강한 힘이 어디서 나오겠는가? 서로를 껴안고 아끼는 마음이야말로 그 진정한 원천이다.

   최근에 김장 울력이란 말을 배웠다. 울력이란 “구름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힘쓴다”는 뜻이라는데, 절에서 수행의 한 방법으로 스님들이 김장에 힘을 모으는 걸 이른다. 꼭 절이 아니더라도 가정에서도 겨울을 나기 위해 모두가 힘을 보태지 않는가. 2004년 한림의 겨울을 풀고 녹이는 적극적인 손길은 역시 학교 당국에서 내밀어야 할 것이다. 눈 속에 파묻혀도 거뜬히 견뎌낼 한림의 울력을 일구어낼 수 있다. 응어리지고 맺힌 것을 연내에 풀고 홀가분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해를 맞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