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개혁’과 ‘문민’의 움직임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었고, 96년 한국은 ‘보수’와 ‘공안’으로 움직임이 회귀되고 있다. 그랬다. 역사는 늘 ‘개혁’과 ‘보수’의 반전을 거듭했었다. 단지 우리가 ‘그랬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릴 뿐이다. 정부에서는 안기부법 개정이니 집시법 개정이니 하는 법조항을 들어 ‘말 안 듣는 놈은 모조리 쓸어버리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고, ‘개혁 대통령’의 천명은 중도하차할 위험에 이르렀다. 옛날에는 왕에게 상소를 올렸듯 우리 대통령 각하께는 진상서라도 올려야겠다.

▲“친애하는 대통령 각하께! 법은 사회 질서 유지의 기본 바탕이자 다수의 사람들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규제, 보호장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국회에 상정될 집시법 개정과 안기부법 개정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에 위반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봅니다. 지난 24일 정부와 신한국당은 집회 및 시위의 신고 때 장소 관리자의 승인서를 첨부해야 하고, 경찰의 해산명령권을 추진할 것을 골자로 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승낙서’ 첨부는 해당 장소 관리자가 시설 피해를 들어 승낙서를 내줄리 없기 때문에 ‘모든 집회를 불허한다’는 입장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리고 경찰의 해산명령권은 경찰당국의 ‘자의적인 해산’ 위험이 있고, ‘죄목붙이기’에 따라 ‘죄명’만 달라지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집시법 개정 뿐만 아닙니다. 안기부법 개정은 ‘안기부 흑색선전물 살포사건’으로 알 수 있듯이 안기부의 권력남용을 각하께서 인식하시고  93년에 ‘개혁입법’의 일환으로 개정됐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 3년만에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겠다는 것은 ‘흑색 내막’의 의심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정부측이 제시한 안기부법 개정은 국가보안법 7조(고무·찬양 등)와 10조(불고지)에 대해서도 수사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결국 안기부의 ‘수사권’과 ‘권력증대’를 늘리겠다는 논리입니다. 이에 야당, 민변, 시민단체 등 많은 단체들이 안기부법 개정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보수화, 기본권의 후퇴, ‘공작정치 가능성’ 등을 들어서 말입니다. 아마도 안기부법 개정은 국회에서도 많은 이견으로 인해 ‘정당성’을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됩니다. 집시법 개정안, 안기부법 개정안을 제안하고,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한다’고 뿌듯해 하실 각하가 연상됩니다. ‘민주화 시대에 걸맞는 정책을 집행하시는 것이 어떨까?’라고 감히 대통령 각하께 충고 드립니다” - 0월0일 00올림

▲집시법 개정안, 안기부법 개정안이 얼마나 ‘시대적 정당성’을 얻을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5·18광주 항쟁때도 그랬고, 한총련 연세대 시위때도 그랬듯이, 앞으로 어떤 사건이 또 ‘그랬다’가 될지 모르겠다.                                                          

/ 송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