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계 자료보급 전적으로 대학에 의존하던 학부 시절 작품 번역 힘써
외국의 고급예술 한국 보급에 자부심
느껴
2002년 한림대 영문과 교수직을 정년 퇴임한 한상철 명예교수는 현재 본교에서 문화연구입문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한교수는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대학 시절부터 연극 동아리 회원으로서 영미 희곡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작품을 대학에 의존해 온 당시 우리 나라 연극계에 해외 희곡을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던 한교수는 연극을 비롯한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는다. 특히 “지성의 상징인 대학에서는 자신이 보고 접하는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을 갖춰야 한다”며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변천하는 문화 현상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올바른 가치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는 한교수. 연극 평론과 더불어
수업을 통한 극작가 양성과 문화 발전에 오랜 시간 힘써온 그를 지난 24일 만나봤다.
▲관심을 갖고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고등학교시절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1950년 당시 고등학생이 영화관에 가는 것은 금지돼 있었지만 학생신분을 숨기고서라도
자주 영화를 보곤 했다. 하지만 우리 나라 대학에는 영화과가 없을 정도로 영화를 학문적으로 접근할 만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던 때라 영화 못지
않게 관심 있었던 연극을 연구해보고자 마음먹었다. 영화와 연극은 친근한 자매예술이라고 생각했던 터였다. 연극을 통해 영화를 이해하고 영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 연극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학을 전공하셨는데, 자신의 전공이 대학 시절 연극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대학에 재학중이던 50년대 후반 당시 연극계는 자료수집을 전적으로 대학에 의존했었다. 외국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지식을 갖춘 대학생들뿐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거의 모든 작품이 번역극이었던 우리나라의 연극분야에서는 영어전공자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했다. 나
또한 대학시절 연극동아리에 소속돼 해외의 발전된 희곡을 번역함으로써 예술이 보급되지 않은 우리나라에 해외의 많은 작품을 소개했다. 당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외국의�고급예술문화를 한국에 보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꼈다.
▲연극활동을 하던 당시의 연극계와 현재의 연극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50년대 후반에 비해 지금의 연극계는 표면적인 면에서 장족의 발전을 거쳤다. 우선 연극계에 인재가 풍부해졌으며, 무대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여건도 확실히 좋아졌다. 또한 몇 해 전부터인가 국가에서 연극 분야에 대한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과거에 비한다면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히 발전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몇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 국내에는 세계연극계에서 인정받을 만한 작품이
탄생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고생하여 만들어낸 작품을 공연할 만한 장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연할 극단이
5개라면 1개만이 공연을 겨우 할 수 있을 정도다. 또한 극장 대부분이 소극장이다 보니 협소한 규모의 연극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보다 웅장한
규모의 연극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중극장 규모의 극장이 많이 마련됨과 동시에 공연장의 수도 함께 늘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연극계의 외적 측면 외에 내적 측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현재 한국작가들은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즉, 현실을 바라보는 투시력과 통찰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해외 대가들만큼 깊고 넓지 않은 것 같다.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연극으로 꾸미는 재주와 감동을 줄 수 있을 만한 재능이 부족해 보인다.
좀더 창의적이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 많이 나오는 것이 필요하다.
▲학내에서 연극에 관심 있어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
중앙 연극동아리 「한림극회」에서 활동하면서도 평생 연극을 하겠다는 학생을 거의 보지 못했다. 가끔 보게 되는 ‘나중에도 연극을
하고 싶다’는 학생들을 만나면 굉장히 반갑다. 한편으로 사회나 학교에서 턱없이 부족한 도움을 받는 학생들을 보면 중간에 좌절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최근에는 연극을 하고 싶어하는 배우가 없어 연극을 올릴 수 없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내가 연극을 할 때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과거보다는 경제적 측면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연극을 하겠다는 정열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연극인으로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주고 싶다.
▲요즘 학생들은 TV나 영화에 비해 연극을 멀리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연극은 사람이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예술이다. 때문에 이는 어떤 예술보다도 인간과 밀접하며 절대 먼
거리에 있지 않다. 어렵게 느낄 필요가 없다. 또한 문화에 대한 폭 넓은 관심과 흥미를 가졌으면 한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문화가
아닌, 삶을 위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문화를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 한국문화 자체가 발전할 수 있다. 판자집에 갇혀
사는 사람은 훌륭한 집을 상상하기 힘들다. 항상 훌륭한 문화를 접하고 있어야 자신의 삶도 그 일부가 된다. 훌륭한 나라는 부자인 나라가 아니고
문화수준이 높은 나라이다.
/ 백호선 기자 bair@hallym.ac.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