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를 거치면서 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는 자본주의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수천년간 가장 확고부동한 지배체제였던 전제 군주제, 달콤한 장미빛 미래를 바탕으로 한 때 전 인류의 사상을 이분화했던 공산주의 등 쟁쟁한 라이벌들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유일무이한 존재로 남은 자본주의. 인류 스스로가 탄생시킨 이 불가사리의 파괴력과 그의 운명에 대해 누구나 한번쯤은 진지하게 해답을 찾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필자가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꼽길 주저치 않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E.J. 홉스봄은 그의 저서 제국의 시대에서 그 답을 명쾌히 내리고 있다. 홉스봄 일대의 역작인 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에 이어 완결편에 해당하는 제국의 시대에서 그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 대한 승리감에 젖어 자신의 문제들을 외면함으로써 사회정의와 인간성을 구현하는데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는 민주주의와 시장 사이의 모순이 현대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시장은 인간을 사적인 고객으로 취급하지만 민주주의는 공동체의 문제에 책임을 질줄 아는 공적 시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시장의 전면적 지배는 곧 민주주의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홉스봄의 저서는 그 방대한 자료의 수집 및 해박한 역사 지식, 그리고 탁월한 이야기 솜씨가 함께 어우러져, 매 페이지마다 밑줄 긋기와 책귀퉁이 접기를 빼놓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진정한 매력이 있다. 일반적인 역사서 답지 않게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듯 느끼게 하는 생생한 필체는 타임머신이 공상과학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18세기의 유럽과 미국에서 혁명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당시의 긴박한 풍경은 물론이거니와 19세기 산업혁명의 열풍에 휩싸인 유럽 제국들의 엄청난 에너지 발산,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 축적된 잉여자본을 바탕으로 강대국들이 세계를 제패하는 과정들이 한편의 완성도 높은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물론, 소소한 에피소드에서부터 굵직굵직한 대형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때 그때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이야기 재료들로 묘사와 주장을 버무리는 솜씨가 탁월한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그러나, 역시 뭐니뭐니해도 홉스봄의 저서가 갖는 가장 큰 장점은 전공 불문, 취미 불문하고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다. 철학은 지나치게 사유적이며, 과학은 너무 난해하고 문학은 그 의의를 이해하기 힘든 반면, 홉스봄의 역사는 그야말로 재미가 있다. 이점이 바로 20세기 명저의 첫 번째로 필자가 홉스봄의 명저를 택한 이유다.

   한때 필자의 대학 시절에 개나 소나 다 읽는 책으로 폄하(?)될 정도로 인기 폭발이었던 이 책은 “돈 많이 버세요”라는 자본주의적 인사문구가 너무나도 익숙한 현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끝으로 사족을 달자면, 홉스봄은 정치, 역사서술, 사회이론뿐 아니라 재즈 비평가로 활동할 정도로 문화비평과 예술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때문에 그의 이름에 붙는 호칭도 역사학자, 문화학자, 경제학자 등 각양각색. 천재는 왜 항상 모든 것을 다 갖추는지. 그러기에 그의 머리속에 나온 지식 역시 천재적으로 우리들을 사로잡는것이 아닐까.                   / 심훈 언론정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