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한 개에 사람은 여럿이 있다. 어떻게 나눠 먹는 것이 가장 ‘정의’로울까? ·사회주의 : 똑같이 잘라서 모두에게 하나씩 배분한다. ·자본주의 : 돈을 내는 사람들부터 하나씩 배분한다. ·존 롤스 : “가장 힘있는 사람이 마음대로 쪼갠 후, 사과 조각을 선택하는 것은 가장 약자부터 먼저 고를 수 있도록 한다.”

  하버드 대학의 ‘성인’으로 불리는 존 롤스는 20세기 도덕 철학의 거목이다. 1958년 ‘공정으로서의 정의’ 라는 논문을 발표한 이후 “분배적 정의” “시민불복종” “정의감” 등의 논문을 연달아 발표했으며, 20여년에 걸친 연구의 결과로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을 1971년 출간하였다. 한 평생을 ‘정의’만 연구하다 타계한 까닭에 ‘단일 주제의 철학자’로 불린 그는 분명 인류의 이상향을 꿈꿨던 20세기의 현자였다.

  정의론이라구? 정의에도 이론이 있나? 이 같은 질문은 바로 서양적 철학관, 특히 영미 철학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이 내뱉을 수 있는 첫 번째 질문이다. 분석철학과 실증주의가 주류를 이루는 앵글로 색슨 정치 철학에서 “정의는 경험적으로 검증 불가능하며, 따라서 정의의 원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통설이었기 때문.

  ‘정의론’에서 롤스의 연구 초점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고전적인 숙제를 어떻게 동시에 풀어내느냐는 데 맞춰져 있다. 이들 두 개념은 서로 갈등하는 정의의 두 원리임과 동시에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롤스는 이 이율 배반적인 주제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자유주의의 틀 속에 사회주의적 요구를 끌어안는 방식을 찾는다.

  우선 롤스는 ‘정의’를 세우기 위해 가장 앞세워야 할 제 1원리로 ‘평등한 자유’의 원칙을 내세운다. 사상·양심·언론·집회의 자유, 보통선거의 자유, 공직을 맡고 재산을 소유할 자유 등 자유주의가 강조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들을 평등하게 보장하는 것을 대전제로 삼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이 자유의 목록에서 ‘자본주의적 시장의 자유’라 할, 생산제의 사유, 생산물의 점유, 소유물의 상속·증여의 자유를 제외한다. 그런 자유는 ‘기본적 자유’에 해당하지 않으며, 경험적으로 결정해야 할 정칟사회적 문제로 보는 것이다. 여기에 롤스의 자유주의의 특징이 있다. 롤스 정의론의 제2원리는 ‘차등의 원칙’이다. 사회의 혜택을 가장 적게 받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경제적 불균등 분배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제 1원리는 평등한 시민의 기본적 자유를 희생해선 안 된다는 자유주의적 핵심을 나타내며, 제2원리는 자유주의적 자유가 사회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빈말이 되지 않게 하는 사회주의적 핵심을 보여준다.

  롤스의 정의관은 자유주의적 이념과 사회주의적 이념을 가장 체계적으로 통합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롤스의 ‘정의론’도 출간당시에는 전혀 빛을 보지 못했다. 구미를 휩쓴 ‘68혁명’으로 뒤숭숭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 갈수록 심화되는 미.소간의 냉전 구도는 그의 20여년에 걸친 역작을 ‘한가로운 객담’으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90년대에 들어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그의 저서에 담긴 사회주의적 사상 때문에 배척됐으나, 사회 비판의 에너지 또한 풍부하게 담겨 있음을 속인들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탄핵과 관련한 헌법 및 법률에 그 어느 때보다 정통해 있는 요즘, 롤스의 ‘정의론’은 시쳇말로 ‘정의가 물결치는 세상’을 꿈꿔오는 우리들의 사고를 깊이있게 가다듬기에 충분한 거름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