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남아있는 ‘난장이 아버지’

  일명 ‘난쏘공’으로 불리우는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들어본적이 있다고 대답한다면, 필자는 20대의 당신을 다시 한번 쳐다볼 것이 분명하다. 80년대가 분단 현실의 아픔을 그린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으로 대표된다면, 70대에는 남북간의 이념 갈등에 좌절하는 지식인을 그린 최인훈의 소설 ‘광장’과 함께 대표적 대학 소설이었던 ‘난쏘공’이 있었다.

  굳이 이 책을 한림학보의 세 번째 20세기 명저로 꼽은 이유는 앞서 소개했던 책들이 모두 서구의 교양/학술 서적인데 반해, 순수문학으로서는 드물게 ‘난쏘공’이 한국 문단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난쏘공’에서 다루는 주제로부터 여전히 우리 사회가 자유롭지 못한 시대적 아픔도 함께 하고 있다.

  제13회 동인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문학과 지성』 1976년 겨울호에 발표되었던 ‘난쏘공’은 12편의 작품으로 구성된 조세희의 연작 장편 소설로 도시 빈민의 가난한 삶과 처참한 패배의 한을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은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상황이나 말들이 연상 고리가 되어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어 난해한데도 발표 이후 문단과 독자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이는 1970년대 산업화로 황폐해진 하층민의 삶을 이해하고자 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성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와 관련, 얼마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작품의 이해를 어렵게 하는 소설의 구조가 문학적인 성과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1970년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난쏘공’에는 도시화로 벼랑으로 몰리는 최하층민의 처참한 생활상과 노동환경, 주거문제, 노동운동의 에피소드 등이 여러 가지 상징적인 언어로 담겨져 있다. 사실 이 작품에 담겨 있는 소외된 도시 근로자의 여러 문제는 지금껏 우리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도돌이표의 문제이다. 생존에 필요한 최저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열악한 작업 환경, 고용자로부터 강요되는 부당한 노동 행위, 노동 조합에의 탄압, 폭력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극한적 심리 상태, 그리고 가진 자들의 위선과 사치, 그들의 교묘한 억압 방법 등 산업 사회의 부정적 측면들이 난장이 아버지를 둔 단란한 가정의 삼남매를 통해 고발되어 있다.

  소설 ‘난쏘공’에 나오는 난장이 아버지는 이 소설의 주제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착한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면 달나라로 떠나야 한다는 화자의 말에 동조하는 아버지는 현실에서 달나라로 비상하기 위해 굴뚝에 올라갔다가 결국 죽고 만다. 읽은 지 이미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 장면은 도시빈민들의 최후를 예시해주는 노스트라다무스적 장면으로 필자의 뇌리에 깊이 박혀있다.

  ‘난쏘공’은 1978년 첫 출간된 이후 4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1백40여쇄라는 경이적인 출판 기록과 순수문학으로는 드물게 50만부가 넘는 발행부수를 자랑하고 있는 스테디 셀러다. 몇 년전 중앙일보가 조사했던 ‘헌책방에서 가장 잘 팔리는 책’ 가운데, 여타 장르의 쟁쟁한 책들을 제치고 8위로 선정된 것은 시대가 바뀌어도 입소문, 귀동냥을 타고 끈끈히 이어져오는 ‘난쏘공’의 마력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얼마전 ‘난쏘공’은 지난 20여년간 동거해온 출판사를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내용을 대폭 손질하고자 했으나, 결국 한가지만 고쳤다고 한다. 출간 당시 ‘근로자’로 표현됐던 주인공들에게 ‘노동자’라는 진짜 이름을 되찾아준 것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난장이’로 표현된 아버지의 모습이 2004년 오늘에는 ‘다른 생김새의 이방인’인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과 ‘이동권’을 생존권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장애인들, 그리고 부당 차별대우에 신음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난쏘공’은 강산이 2번 이상 변한 지금에도 제목에서부터 내용에까지 탄생 당시부터 간직하고 있던 강렬한 에너지를 조금도 잃지 않고 있는 느낌이다.        
/ 심훈 언론정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