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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미디어의 시대 또는 이미지의 시대, 영상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마셜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는 시대적인
예언서, 아니 조금 과장하자면 텔레비전 시대의 성서와 같은 책이다. 미디어 기술의 급속한 변화와 발전으로 대부분의 미디어 관련 서적의 수명이
운명적으로 단명인데 반해, 『미디어의 이해』는 출간 이후 40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멀티미디어, 인터넷 시대인 요즘에도 미디어 학계나
현업에서 자주 인용되는, 신선하게 살아있는 고전이다.
이 책은 유명하다. 때로는 대중적이기까지 하다. 일상용어처럼 사용되는 “지구촌(global village)”, “미디어는
메시지이다”와 같은 명쾌한 명제, “핫 미디어, 쿨 미디어”의 독특한 미디어 구분법 등은 모두 맥루한이 이 책에서 제시했다. 그러나 전공자의
필독서처럼 돼 있는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를 완독한 미디어 전공자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시사용어가 되어버린 개념의 연원과 깊이를 찾아 『미디어의 이해』를 펼치는 순간, 문맥 곳곳에 박혀있는 영문학자인 저자의 해박한
문학적 예시와 극단적이고 기발한 선언적 경구, 전혀 익숙치 않은 시각 등이 독자의 지적 인내심을 시험한다. 출간 당시 이 책의 편집자는 책이
성공하려면 새로운 것이 10% 이상 있어서는 안되는데 이책은 75% 이상이 새로운 것이라고 불평을 했다고 한다. 국내 번역서는 이책의 매력인
미묘한 지적 뉘앙스를 전달하는데 때때로 실패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가끔씩 원전을 뒤지게 만드는 이중고를 안겨준다. 그럼에도 문명사적 관점에서
미디어의 본질과 흐름을 읽어내려 했던 맥루한의 사상을 따라가다 보면 왠만한 읽기의 번거로움쯤은 어느새 지적인 유희 정도로 치부하고 싶을 정도로
충분히 지적으로 매력적이다. 그리고 여전히 참신하다.
이 책에서 맥루한이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명제는 “미디어는 메시지이다”라는 것이다. 미디어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좋은 메시지 또는 나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용기에 불과하다는 일반 상식에 도전하여 맥루한은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라고 선언해 버린다.
과연 그러한가. ‘좋은 정보, 기발한 아이디어, 훌륭한 생각이 있으면 신문이든 텔레비전이든, 영화든, 인터넷이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물론 맥루한은 미디어에 실리는 메시지 내용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맥루한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다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미디어에 실린 메시지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근원적인 메시지, 즉 미디어의 형식에 포박되어 버린 인간 인식의 한계였던 것이다.
맥루한에 의하면 모든 미디어 기술은 인간의 신체 및 감각기관의 확장 형태이다. 문자는 시각의 확장이며, 의복은 피부의 확장,
마이크-스피커는 음성과 청각의 확장이다. 그 가운데�특히 인쇄술은 인간의 다른 감각을 억압하고 시각을 지배적인 감각으로 자리 잡게 하면서
근대문명의 토대를 형성하였다. 근대문명에서 활자문화는 순차적으로 정리되는 선형적이고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만들어 냈으며 혼자 눈으로 읽는 상황
속에서 개인주의를 조장했으며 표준어 정착을 통한 근대 민족국가를 형성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쇄 미디어는 인간의
선형적이고 이성적인 근대적 사고방식이라는 거대한 메시지를 만들어 낸 셈이다.
이같이 인쇄기술이 만들어 낸 근대적 사고방식은 인쇄매체에 담기는 구체적인 내용과 관계 없이 근본적인 차원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인 것이다. 맥루한은 인간 감각 중 기형적으로 시각에 주로 의존하는 근대 문명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대신 텔레비전은 원시
부족사회가 그랬던 것처럼 시각과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사용하게 하는 기술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전세계 부족을 다시 묶어 주는
재부족화(retribalization)를 통해 역사상 유례없는 지구촌(global village)을 만드는 매체로 인식하였다. 일부 평자는
맥루한이 문자문명의 미덕과 지혜를 과소평가하고 영상문화의 문제점을 간과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같은 비판자들을 향해 맥루한은 인쇄문화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텔레비전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형이라고 반박한다. 여전한 활자문화나 영상문화간의 공방은 “미디어는 메시지이다”라는
맥루한의 명제를 입증하고 있을 뿐이다.
/ 최영재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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