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차별을 사회적인 차별로 인식하고,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여성운동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이에 문화부에서는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태동과 발전 그리고 향후 전망에 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여성운동의 태동과 자유주의 여권운동
2 진보적 여성운동
  ① 일제하와 미군정기, 7·80년대
  ② 90년대와 그 이후의 과제

  우리사회에서 진보적인 여성운동은 일제하에서 맑스주의 여성해방이론에 젖줄을 대고 시작됐다. 진보적인 여성운동은 여성노동자와 여성농민 등 주로 민중여성들의 생활상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러한 여성문제의 해결은 체제안에서의 여성의 권익 추구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여성을 근본적으로 억압하는 사적소유제 즉 자본주의체제를 변혁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점에서 자유주의 여권운동과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이러한 이념적 지향성은 한편으로는 여성문제를 사회 전반의 문제들과 유리시키지 않고 항상 사회운동과 연계성을 유지할 수 있게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성문제는 사회 전반의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히 해결되는 것으로, 또는 부차적인 문제로 뒷전으로 밀려났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우리 사회가 여성문제만을 전면으로 내세울 수 없었던 식민지, 군사독재체제라는 역사적인 특수성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에서는 진보적인 여성운동의 역사를 일제하와 미군정기의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운동과 분단 이후 단절된 진보적인 여성운동을 자생적으로 복원한 80년대까지의 시기, 그리고 국내외 정세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는 90년대 이후의 여성운동을 살펴보기로 한다.

  일제하에서 시작된 자본주의화로 방직, 제사, 고무, 정미업 등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임금인상, 임금인하 반대 등의 생존권 투쟁을 벌였으며, 일본인 감독의 구타와 성폭행에 반대하는 투쟁을 통해서 여성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여성 대중들의 생존권 투쟁에 기반한 여성운동의 발전에 힘입어 1927년에 전국적인 여성대중 조직인 「근우회」가 성립되기에 이르렀다. 「근우회」 활동은 대중에 뿌리를 둔 지회에서 특히 왕성하게 전개되어, 야학을 설치하고 운동가 양성을 위한 부인강좌를 개설했으며 여학생 운동을 지원하였다.

  1931년 「근우회」가 해소된 이후 일제의 탄압 심화, 경제공황의 여파 등으로 일제에 순종하고 타협하는 단체 이외의 활동은 금지된 상황에서, 진보적인 여성운동의 조직적 기반은 비합법 또는 반합법적인 「노동조합」, 「농민조합」 내 여성부로 옮겨졌다. 다른 한편으로 「근우회」 조직의 일부 성원들은 중국 본토와 만주로 나가 항일 무장투쟁에 개별적으로 참가하면서 지속적으로 활동을 해나갔다. 이러한 조직적 기반과 활동들이 있었기 때문에, 해방 이후에 사회주의 계열의 전국적인 여성조직인 「조선부녀총동맹」(이하 부총)이 즉각적으로 조직될 수 있었다.

  「부총」은 조직과 행동강령에서 「근우회」의 맥을 잇고 있었다. 이들의 활동은 주로 민중 여성들의 생활상의 요구였던 쌀 요구투쟁, 원호활동, 혁명가 가족지원사업 등을 벌였으며, 미조직 대중을 조직했다. 그러나 모든 사회주의 계열의 운동이 미군정의 탄압으로 활동의 폭이 축소되었던 것처럼, 「부총」도 「남조선 민주여성동맹」으로, 「남로당 부녀부」로 위축되어 갔다.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과 한국전쟁으로 이데올로기 대립이 격화되면서, 진보적인 여성운동은 인적 자원과 경험이 전수되지 못하고 그 맥이 완전히 끊겼다.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된 6·70년대에는 관변여성단체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생산직 여성노동자들이 인간 이하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스스로 떨쳐 일어나면서, 진보적인 여성운동의 맥은 밑으로부터 복원되기 시작했다. 여성노동자들의 운동은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노동조합」의 결성조차 불온시되던 유신독재하에서 침체된 사회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들의 운동은 주로 노동조건 개선과 생존권 확보(방림방적, 해태제과, 남영나이론), 어용노조를 민주화하고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 민주노조를 결성(동일방직, 청계피복, YH무역 등)했다. 70년대에 축적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력과 70년대말부터 유입되기 시작한 서구의 여성해방이론의 영향으로, 80년대의 여성운동은 운동이념·조직·실천에서 1970년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발전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거치면서 1983년 청년지식인 여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이념을 가진 「여성평우회」, 「여성의 전화」, 「민주화운동」, 「청년연합 여성부」 등의 진보적인 여성단체들이 조직됐다. 80년대 여성운동의 새로운 막을 올린 「여성평우회」는 가부장적 성차별 문화의 개혁, 남녀 모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건설, 민주통일 사회건설을 창립 목적으로 삼았다. 이 단체들은 결혼퇴직제 반대운동, 톰보이 부당해고 반대운동, 빈민지역 공부방 설치운영, 부천 성고문 규탄,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 최루탄 추방운동 등 여성운동과 사회민주화의 과제를 실천적으로 통일시켜 나가면서 조직적인 분화,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 결과 1987년 21개 여성단체가 모여 전국적인 「한국여성단체연합」이 결성됐다. 이후 생산직 여성노동자들의 문제를 다루는 여성단체들이 서울의 「한국여성노동자회」를 필두로 하여 인천, 부천, 부산, 성남, 광주, 마산, 창원 등 7개 지역에 조직됐으며, 80년대 이후 급격히 증가한 사무직 여성들과 주부들을 대상으로한 「한국여성민우회」가 설립됐으며, 마산, 제주, 대전, 대구, 광주, 전주, 거창, 수원, 청주 등지에서 진보적인 여성단체가 결성됐다. 또한 1989년에는 여성농민의 독자조직인 「전국여성농민위원회」가 결성되어 해방 이후 40여년만에 여성운동은 각 계급계층별, 지역별 운동으로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