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통찰력있는 글을 철학은 깊이가있는 글을 72명 수시 면접생 중 역사배운 이는 단 한 명 대학생들도 울릉도에 있던 왕국 이름 몰라 한달 전 대입 수시 2차 면접 시험에 면접관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언론과 방송, 광고와 인터넷이라는 네 개 전공으로 나뉘어 있는 본교의 언론정보학부는 시대적 특성상 고교 응시자들로부터 인기가 많아 6, 7대1에 이를 정도로 경쟁률도 무척 높은 편이다. 당연히 수십 명과의 만남에 대한 중노동을 각오하고 당일 면접을 시작했다. 학교 당국에서 전달 받은 출제 봉투를 뜯어 보니, 여러 면접용 문제 가운데 “18, 19세기 세계의 역사적인 사건을 말해 보시오”라는 문항이 있었다. 아침 9시 30분부터 저녁 5시 30분까지 식사 시간 1시간 30분을 제외한 6시간 30분 동안 면접한 학생의 총 수는 72명. 놀라운 사실은 이들 가운데 불과 1명만이 정답에 속하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예로 들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놀라움은 수많은 응시자들과의 대화 속에 나타났다.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고등학교 교육에서 ‘국사’와 ‘세계사’가 더 이상 필수 과목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법, 사회, 한국 지리, 세계 지리 등과 함께 고를 수 있는 선택 과목으로 국사와 세계사가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현실을 설명했다. 인문계의 경우 여섯 과목 가운데 세 개를 골라야 하는데 외울 것이 많고 고리타분한 국사와 세계사는 더 이상 매력적인 선택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도 면접을 통해 깨달았다.

  다음의 학과목 수업 시간에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며, 학생들에게 혹시나 해서 다시 한번 물어 보았다. “과거, 제주도에는 탐라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울릉도에 있었던 국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손들어 보시오.” 30 여명의 학생 가운데, 절반에 채 못 미치는 학생들만이 손을 들었다. 매스컴에서 하도 떠들고 난리를 부리니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사실은 알겠는데, 그 독도가 역사적으로 우산국이라 불리우는 나라의 일부였다는 사실은 더더욱 모를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지난 호에서 독서의 기본 가운데 으뜸 분야로 문학을 꼽았다면, 오늘 소개할 두 번째 독서 장르는 단연 역사이다. 문학이 글쓴이의 작품에 정감을 불어 넣고 맛과 향을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면, 역사는 글에 반박할 수 없는 논리를 불어 넣는다. 망망 대해에 떠있는 듯 하지만, 어떻게 해서 내가 탄 배가 어느 곳에 표류, 또는 정박하고 있는지, 구름과 바람, 해류에 따라 앞으로 어디로 흘러 갈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예측 가능케 하는 것이 역사이다. 자연히 역사를 아는 글은 논지가 어디로 흘러야 하는지, 무엇이 핵심적인 이야기인지를 정확하게 짚어주는 혜안을 선사받는다. 결국, 같은 산을 등산하게 돼도 나침반과 내비게이터를 장착한 등산객과 아무 지침이나 정보 없이 산을 타야 하는 등산객의 행로 마냥, 역사를 고려하는 글쓰기는 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요점을 전달하는 능력을 수반하게 된다. 때문에, 역사를 접하면 접할수록,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인류의 업적과 과오를 고찰하게 되며, 미래에 대한 예측 능력을 함양하게 돼 글도 보다 입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전개해 나가게 마련이다.

  생각해 보라. 여러 사회 현상을 논함에 있어, 역사적인 근거와 유사 사례를 떠올리며, 과연 현재의 사건, 사고는 사회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하고자 하는 자와 별 생각 없이 현 상황을 바라보며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뻔한 스토리를 다시 되풀이 하는 자의 차이를. 이러한 점은 철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끊임없는 사고를 통해 자신만의 시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를 해석하는 학문인 만큼, 많은 지성인과 현인, 현자들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접할수록, 감탄과 경탄, 고민과 토론을 통해 한층 성숙해진 시각을 배양할 수 있다.

  자칫, 아집과 독선에 빠지기 쉽고 하나만을 생각하는 근시안적 행태는 그래서 저절로 치유되고 교정될 수 있다. 그렇다면, 독서를 해도 기왕 문.사.철이 어우러진 책을 읽는다면 ‘따봉’에 해당하는 일석삼조가 아닐까? 기본적으로 문학 작품이지만, 역사적인 배경 속에 작가의 또는 작가에게 강한 영향을 미친 철학자의 정신세계가 투영된 작품들이라면 무조건 올 가을의 독서 1순위는 당연할 터. 주변의 文·史·哲 관련 선생님들과 선배들에게 묻고 찾아보도록 하자. 사람마다 다 기준이 틀리기에 여러 곳에 물어 공통 분모를 찾아내고 그 책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 보자. 만일 세 개의 학문이 어우러진 작품들을 구하지 못한다면, 두 개의 공통분모를 포함한, 문학-철학, 문학-역사, 철학-역사류의 책들도 찾아보도록 하자.

  결국, 그런 작품들은 본인의 피가 되고 살이 될 테니. 이쯤 되면, 굳이 글짱이 되려하지 않아도 저절로 글을 깨우쳐 나갈 수 있게 될 터. 다음은 필자의 기준에서 文·史·哲 이 적절히 어우러진 작품들이다. 다른 분들께도 여쭤보고 만일 같이 권하는 이를 찾는다면 한번쯤 읽어보면 어떨는지…

文·史·哲 작품들: 양철북 (그라스), 분노의 포도 (스타인 백) 文·史 작품들: 임꺽정 (홍명희), 장길산 (황석영), 조정래 (태백산맥), 토지 (박경리) 史·哲 작품들: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文·哲 작품들: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대화 (플라톤), 시학 (아리스토텔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