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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띄어쓸 경우, 전혀 다른 뜻으로 변해 한중일 가운데 한글만 지닌 고유 문화 글쓰기에도 급수가 있다. 바둑의 18급에 해당하는 왕초보에서부터 절대 경지에 이른 프로 9단의 달필에 이르기까지…
오늘은 그 글쓰기에서 첫걸음에 해당하는 18급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제 1 관문, 띄어쓰기에 관한 얘기다. 원론적으로 볼 때, 가장 먼저 나와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일 늦게 나온 점에 대해 사과를 올리며, 다음 주까지 두 번에 걸쳐 얕은 지식을 몇 자 소개하고자 한다.
Idonotunderstandyourword
6시내고향방송대가돈뜯어
99년전미오픈테니스대회
나는야한여자가좋다
19세기 말, 벽안의 선교사들이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전도를 위해 한글을 익혀야만 했다. 당연히 그들은 국어를 쉽게 터득하기 위한 자신들의 문법서가 필요했고, 한글이 소리 나는대로 읽고 쓰는 표음문자라는 데 착안,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규칙을 선보였다. 홍길동전, 춘향전에도 없었던 띄어쓰기를 시도함으로써 알파벳처럼 단어와 단어 사이를 구분 짓기 시작한 것이다. 한글 탄생 이래 400 여년만에 처음으로 선보인 띄어쓰기는 이후 한글의 독창성을 강화시켜주는 또 하나의 독특한 규칙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국어 교육에 있어 맞춤법과 함께 최전방에 배치돼 있는 띄어쓰기는 분명 만만치 않은 정복 대상이다. 한때, 관련 규칙만 120여 항목에 달했으며, 지위 고하,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버거워하는 띄어쓰기는 국어학자들 조차 헛갈려 하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사석에서 만난 어느 전직 대학 총장은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띄어쓰기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어렵기만 하더라”라는 솔직한 푸념은 한글 띄어쓰기가 처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웃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표의 문자인 한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아직까지 띄어쓰기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중국도 띄어쓰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일본의 경우, 명사나 형용사, 동사의 대부분이 한자로 시작하고 조사와 서술어는 그네들의 문자인 ‘가나’로 끝나기 마련이어서 문장 해석에 별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말은 한글 전용으로 점차 그 추세가 바뀌고 있어 띄어쓰기를 하지 않을 경우, 단어간의 구분이 힘들어지고 있다. 70년 전, 동아일보의 한 기사 제목은 아래와 같았다.
全首都의거리뒤흔든學生들의怒濤 (노도: 노한 파도) (동아일보 1936년 8월25일)
지금의 일본어처럼 당시의 신문들은 한자를 많이 사용했던 까닭에 띄어쓰기 없이도 글을 읽어나가는데 별 무리가 없었다.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의해 제정된 후, 무려 4차례에 거쳐 그 규칙이 더욱 세련되게 다듬어지긴 했지만, 실생활에서 띄어쓰기가 널리 활용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신문사만 하더라도 컴퓨터 조판 및 인쇄라는 문명의 혜택을 입지 않았더라면 띄어쓰기의 실질적인 정착은 더욱 오랜 세월을 필요했을 것이다. 과거, 납 활자를 조판해 신문을 인쇄하던 시절에는 교열 과정에서 띄어쓰기 몇 개를 첨가할 경우, 해당 줄에서 밀려난 몇 개의 글자들 때문에 다음 줄 전체를 재조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몇 해전 A 신문사에서 ‘6시 내고향 방송대가 돈 뜯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뽑았다가 방송대측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독자들이 방송대가 돈을 뜯어낸 것으로 잘못 알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찬가지로, B 신문은 ‘99년전 미오픈 테니스 대회’로 띄어쓰기를 잘못하는 바람에, 희대의 오보를 내고 말았다. 99년에 벌어진 미국 오픈 테니스 대회가 무려 1백년 전의 까마득한 과거에 열린 일이 돼 버린 것이다. 마광수 교수를 일약 유명인사로 만들었으나 곧 이어 판금 조치 됐던 도서 역시, 한 편집자의 실수로 ‘나는야 한 여자가 좋다’라는 전혀 다른 책으로 탈바꿈한 적이 있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그런 면에서, 띄어쓰기는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밝혀주고 독자들에게 혼동을 일으키지 않는 면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I∨do∨not∨understand∨your∨word.
6시∨내∨고향,∨방송∨대괄돈∨뜯어
99년∨전미∨오픈∨테니스∨대회
나는∨야한∨여자괄좋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