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발바닥으로 쓰는 것”

  한림 기독학생회(SCA)의 회원으로서 뒤늦게 문익환 목사님의 평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늦게나마 이 글을 쓰게 된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또한 기쁨이기도 하다.

  차가운 기운이 물러가고 따뜻한 기운이 돌아올 때 우리는 그것을 봄이라 부른다. 일찍이 어린 시절 새롭게 움직이는 시기를 봄이라 비유하는데 인생의 가을 시기에 새로이 봄을 맞이한 그분을 ‘늦봄 문익환’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북간도의 출생 시기부터 하나의 독립운동단체와 같은 가문에서 살아온 그는 이미 봄을 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살아온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왔으며 그의 정신이 한국 그리스도의 실체 인지도 모르겠다.

  한국 현대사 백여 년간을 그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수많은 이념의 논쟁 속에 진보와 보수, 통일과 반통일의 갈림길에서 그는 민주주를 기반으로 민중을 섬겼으며 민중과 함께 자라났다. 1970년 11월 동대문 평화시장의 한 노동자의 분신이 머뭇거리고 있는 문익환을 이 시대에 초대하게 된다.

  모세가 하느님의 명을 두려워하다가 광야에서 ‘수행’했던 것처럼 문익환 목사님은 이 시대에 초대되기 전 여러 경험들을 하게 된다. 유엔군 활동 중에서 더러운 이념 싸움을 경험했으며, 우리말 공동성서 번역의 임무를 맡음으로서 엘리트들만의, 기득권층만의 성서가 아닌, 한반도에 사는 민중이 읽을 수 있는 성서를 만들어 주님의 말씀이 민중의 품으로 다시금 안기게 하였다. 1994년 77세의 나이로 별세하기 까지 온전히 ‘발바닥의 위대함’을 몸으로 실천하시고 통일운동을 위해 끝없이 투쟁하신 그의 모습이 이 시대의 진정한 기독인의 모습일 것이다. 

  문익환 목사님은 ‘역사는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발바닥으로 쓰는 것’이라고 했을 만큼 제도화된 역사 속에서 늘 묻히고 소멸되는 ‘발바닥’의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온갖 무용담의 파편 속에 어슴푸레 짐작되던 문익환이란 인물이 ‘피와 살을 가진 실체’로 우리 앞에 놓여지게 된 데대해 이 책의 저자 김형수가 5년 동안 ‘발바닥’으로 기록한 노고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앞에 놓이게 된 이 책은 한 사람의 일대기에 그치지 않고, 그와 함께 우리가 살아왔던 ‘20세기 시대’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모든 기쁨, 모든 영광을 남에게 돌리면서 자신은 말없이 땅을 밟을 뿐인 발바닥”은 문익환이라는 실존이 지향한 가장 구체적인 모습이었다. 그 발바닥의 정신으로 이 반도의 예언자는 ‘꿈’을 이야기했다. 그의 꿈은 몽상이 아니라 반드시 실행해야 할 다짐이고 절박한 역사의 요청이었다.

  한반도의 정치 지도 안에서 그는 틀림없는 ‘중립화 통일론자’였고,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길을 가려했던 것이 아니라 ‘좌’도 ‘우’도 다 같이 갈수 있는 길을 꿈꾸었다. 그는 인간을 편협하게 만드는 경계를 만나면 다음과 같은 노래로 단 한 순간에 허물어 버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가고 너는 와야지.
나는 철조망 너머 터진 발 끌며 네게로 가고
너는 지뢰밭 지나 절뚝거리며 내게로 와야지.
이것밖에 우리에겐 딴 길이 없으니.

  국가보안법 개정·폐지문제로 어지러운 정치권에게 다시금 이 책이 통일의 보충교재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의 분단은 휴전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의 관계속에 있는 것이다. 이를 문익환 목사님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리 삶에서의 분단을 먼저 걷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늦봄 문익환’의 신분적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통일 할아버지’, ‘문익환 선생’, ‘문익환 목사’ 등과 같은 많은 칭호들이 사용되지만 책에서 밝힌 저자의 말처럼 ‘목사님’이 옳지 않은가 한다. 문익환은 그리스도인이요, 그가 외친 구호는 ‘인권’, ‘민중’, ‘통일’이었지만 내면적 실체는 ‘그리스도적 가치의 실현’이다. 히브리 민중의 아픔과 슬픔을 한반도 민중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초월해 우리만의 ‘한’을 그리스도 앞에 고백한 그는 ‘목사님’인 것이다.

  문익환 목사님을 그의 10주기가 되어버린 지금 뒤늦게나마 만날 수 있었던 것이 너무나 다행인 것은 내 안에 담고있는 미움의 벽부터 쓸어내리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분단의 벽을 한 단계 낮춘다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 한다.  사랑을 가져라! 사랑은 지치지 않는다.

/ 김선구 [한림기독학생회(SCA) 학술국장(정보통신·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