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금년 여섯 살 난 처녀애입니다. 내 이름은 박옥희구요. 우리집 식구라고는 세상에서 제일 이쁜 우리 어머니와 단 두 식구뿐이랍니다. 아차 큰일났군, 외삼촌을 빼놓을 뻔 했으니. 저희집은 지리산 북부 지역 운봉읍인데 어찌나 비가 많이 왔던지 땅이 스펀지처럼 물을 빨아들이고도 빗물이 흥건하답니다. 어머니는 ‘루사’때문이라고 물이 나오지도 않는 수도꼭지를 뱅뱅 돌리며 한숨을 쉬셨더랬어요. 저는 루사가 싫어요. 그 서양 계집애 때문에 우리 이쁜 어머니가 저한테 골을 내니까요. 밖에 나가지도 못 허구 동무들도 못 만나구 하여튼 나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랍니다.

▲쿵!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어머니는 드디어 지리산이 못버텨냈나보다고 하셨지요. 사람손에 다친 지리산이 산사태로 보답했나보다구요. 그런데 진짜 큰일은 따로 있었어요. 요 앞 영철이네 아저씨가 구르는 돌에 뒷발을 채이셨다나요. 아무튼 영철이네 아저씨는 항상 말썽이예요. 울 어머니는 비오는 날엔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아마도 아저씨가 어머니 말을 들었더라면 그런 일은 안 당했을텐데. 이럴 땐 정말 어머니가 자랑스럽답니다.

▲지겨운 비소리를 들으며 깨노라니까 사랑에서 외삼촌이 웬 낯선 사람 여섯과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외삼촌이 나를 보더니 ‘옥희야’하고 부르겠지요. “옥희야, 이리 온. 와서 이 아저씨께 인사드려라” 나는 어째 부끄러워서 비슬비슬하니까, 그 낯선 손님이 “그 애기 참 곱다”하시겠지요. 외삼촌은 ‘루사’ 때문에 우리를 도우러 오신 고마우신 분들이라며 처음으로 철든 소리를 했답니다. 원래는 먹고 자는 것도 알아서 한다는 것을 외삼촌이 직접 집으로 데려왔다며 어깨를 으쓱 하지 뭐에요. 저렇게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 하루에 7천명도 넘는다며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삶은 달걀을 아저씨들 밥상에 슬그머니 올려놓지 뭐예요. 아무튼 ‘루사’는 내 마음에 하나도 들지 않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추석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한숨뿐이시겠지요. 글도 제법 읽을 줄 아는 나는 우리 마을이 특별재해지역으로 지정됐다는 뉴스를 들었지 모예요. 저 ‘루사’라는 서양 계집애 때문에 우리나라 돈 5조4천만원이나 피해를 입었다고 난리입니다. 그 돈이면 옥희가 좋아하는 달걀을 몇 개나 살 수 있냐는 질문에 어머니는 눈을 흘기십니다. 아무튼 서양 것들은 하나도 보탬되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나라에서는 위로금을 준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나의 가장 친한 동무인 숙희가 집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숙희는 16일날에 특별위로금을 받게 됐다고 나에게 자랑하지만 나는 차라리 돈 안받고 집 있는 게 행복합니다.

▲“어머나” 어머니가 살며시 눈을 감고 기도를 하시나 봅니다. 한참 비와서 심심할 때는 나오지도 않던 텔레비전이 아침부터 뭐라고 시끄럽게 떠들어댑니다. 잠결에 대충 들었지만 무슨 돈이 엄청나게 많이 모였나봅니다. 최고라나요. 7백90억이 얼마나 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달걀을 한없이 먹을 수 있는 만큼인가 봅니다. 지난번에 모였던 6백83억원을 이겼나본데 아무튼 대단한 모양입니다. 제가 좋아라하는 텔런트 오빠도 돈을 냈나봅니다. 헌데 우리나라에 물 넘치지 말라고 짓는다는 댐도 엄청나게 많지 않나요? 왜 지난번에 돼지가 한없이 물에 떠내려나간 동네가 또 물에 잠겨버렸는지 나는 이해가 안갑니다. “이번엔 저 돈으로 공사 잘해서 숙희네 집이 다시는 물에 떠내려 가지 않을거야” 이럴 때보면 우리 어머니 거짓부리 썩 잘합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로만 보이는 모양이죠. 저 우리 엄마 얼굴 좀 봐라. 어쩌문 저리도 걱정이 가득할까? 나는 압니다. 대통령 아저씨 이제 다시는 내 동무 숙희네 집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고쳐주세요. 소원입니다.

/ 홍경희 기자 imddilddil@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