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날에 꽃으로 피지 않아
실패하신 분 손 들어보세요
이 겨울날에 눈으로 내리지 않아
실패하신 분 손 들어보세요
괜찮아요, 손 드세요, 손 들어보세요
아, 네, 꽃으로 피어나지 못하신 분 손 드셨군요
바위에 씨 뿌리다가 지치신 분도 손 드셨군요
첫눈을 기다리다가 서서 죽으신 분도 손 드셨군요
네, 네, 손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실패를 축하합니다
천국이 없어 예수가 울고 있는 오늘밤에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희망 없이 열심히 살아갈 희망이 생겼습니다
축하합니다

---------------------------------------

  멀쩡히 잘 살아가다가도 가끔, 내 안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한다. 어쩌면 이 누군가는, 내가 뱉어낸 실패들, 묻어둔 실패들, 몇 번 술 마시고 웃어버린 실패들이 모여 형태를 이룬 것일지도 모른다.

  친구 자취방에 내려와 1주일 째 무위도식 하고 있던 나는, 청탁 받은 원고를 떠올리고는 친구의 책장을 뒤진다. 각종 경영학 이론서들로 가득한 책장 가장 밑 칸에, 정확히 한 뼘 만큼 시집이 보인다. 시 쓰기를 포기한 친구의 한 뼘 남겨진 시집들이다.

  정호승의 시집도 이 한 뼘 중에 찾아낸 것이다. 마땅찮은 게 없었으면 시내 서점까지 다녀와야 할 뻔 했다. 이 시는, 뛰다가 멈춘 시민 마라톤 참가자들에게 보내는 박수와 같이 위로를 하는 것도 같고, 아직까지도 저 끝에 뭔가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열심히 내달리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조롱의 박수 소리 같기도 하다.

  내가 학교 다닐 때에는, 한림대학교에 들어온 것을 ‘실패했다’고 여기는 친구들도 있었다. 공무원 시험 같은 것에 실패했다는 이들도 있었고, 역시 가장 많았던 것들 중에는, 연애실패담이 빠질 수 없다. 극단 적인 친구들 중에는 “내 인생이 실패야!”라고 소리 높여 외치던 이도 있었다.

  이 시에 따르면, 예수도 울고 있다고 하니까, 가슴이 먹먹하고 화가 나거나 억울한 사람들도 살짝 기운을 내어보길 권한다. 세상에 희망 따위는 없어, 라며 우울증이나 니힐리즘에 빠져드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국문학과 후배 한 명은 단 한 과목의 낙제로 인해 졸업이 1년 미뤄졌다. “축하합니다” 이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좌절에 빠져 징징거리는 사람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한다. 이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나도 인기 좀 있었을 텐데. 꿋꿋이 일어서는 모습으로?

/ 김원국(시인·국문과 2005년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