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생은 즐거워라
나이 서른에 나는 이미 너무 늙었고 혹은 그렇게 느끼고
나이 마흔의 누이는 가을 낙엽 바스락대는 소리만 들어도
갈래머리 여고생처럼 후르륵 가슴을 쓸어내리고
예순 넘은 엄마는 병들어 누웠어도
춘삼월만 오면 꽃 질라 아까워라
꽃구경 가자 꽃구경 가자
일곱 살배기 아이처럼 졸라대고
여든에 죽은 할머니는 기저귀 차고
아들 등에 업혀 침 흘리며 잠 들곤 했네
말 배우는 아기처럼
배냇니도 없이 옹알이를 하였네

거꾸로 가는 생은 즐거워라
머리를 거꾸로 처박으며 아기들은 자꾸 태어나고
골목길 걷다 우연히 넘본 키작은 담장 안에선
머리가 하얀 부부가 소꿉을 놀 듯
이렇게 고운 동백을 마당에 심었으니 저 영감 평생 여색이 분분하지
구기자 덩굴 만지작거리며 영감님 흠흠, 웃기만 하고
애증이랄지 하는 것도 다 걷혀
마치 이즈음이 그러기로 했다는 듯
붉은 동백 기진하여 땅으로 곤두박질 칠 때
그들도 즐거이 그러하리라는 듯

즐거워라 거꾸로 가는 생은
예기치 않게 거꾸로 흐르는 스위치백 철로,
객차와 객차 사이에서 느닷없이 눈물이 터져 나오는
강릉 가는 기차가 미끄러지며 고갯마루를 한 순간 밀어 올리네
세상의 아름다운 빛들은 거꾸로 떨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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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대 역을 지나고, 이십대 역을 지나고 삼십대 역을 지나고… 아, 너무 많이 왔다고 느낄 무렵, 생의 열차가 뜻하지 않게 스위치백 철로를 만납니다. 뒤로뒤로 밀려가는 생의 열차는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가을 낙엽 바스락 대는 소리만 들어도 여고생처럼 가슴을 쓸어내리는 마흔의 누이, 춘삼월만 오면, 꽃이 지는 것이 아까워 꽃구경 가자고 일곱살 아이처럼 조르는 예순 넘은 어머니, 아들 등에 업혀 침흘리며 잠 들곤 하던 할머니… 어쩌면 거꾸로 가는 생은 슬프고도 즐거운 애잔한 반주곡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요즘 들어, 스스로 시간에 너무 집착해 왔음을 느끼게 됩니다. ‘이 순간’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늘 지나쳐온 역에 집착해 왔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는 출발점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다시 출발지인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려는 본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생의 열차가 후진의 탄력을 받아, 다시 앞으로 전진해 나갑니다. 뒤로 밀렸던 힘까지 다해 더 힘껏 앞으로 전진해갑니다. 거꾸로 가는 생은 앞으로 가는 생의 에너지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끔, 생을 즐겁게 하는 스위치백 철로를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겠네요.

/ 이인자(국문 97년 졸업, 1996년 <현대시학>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