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역 13번 출구에서 크라잉넛의 멤버 김인수씨를 만났다. 그날따라 몸이 아프다며 홍대 쪽 작업실에서의 만남을 취소한 그는 자주 보던 S운동화 광고에서의 모습보다 다소 초췌해진 모습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뒤로 묶은 머리에 정리된 콧수염, 검은 점퍼에 비교적 수수한 차림으로 방금 집에서 나와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던 그의 모습에는 장난기많은 크라잉넛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마치 동네 삼촌같은 정겨움이 있었다.

  그는 홍대 앞 클럽 드럭에서의 DJ 생활을 통해 그 곳에서 알게 된 크라잉넛 초기 네 명의 멤버와 많은 음악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아왔다.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그가 본격적으로 크라잉넛에 합류해 밴드생활을 한 것은 3집때부터. 팀의 맏형으로서 얻게 된 크라잉넛의 ‘정신적 지주’란 닉네임에 그는 “옛날에나 그랬지, 지금은 애들 머리가 너무 커서…”라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네 명의 멤버가 동시에 군대로 떠난 지금도 친구들의 밴드에서 키보드 세션을 도와주고, 솔로 프로젝트 앨범도 자체 제작중이라는 그는 “앨범을 낸다고 해서 뭐 전국적으로 판매하는 건 아니고, 아는 음반사 몇 개에만 뿌리는 식이죠”라 말하며 인디 뮤지션다운 배짱을 보였다.

  음악을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냐는 대한 질문에 그는 콕 찝어 말할 계기는 없었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쭉 음악 듣기를 좋아했어요. 94∼95년쯤 클럽 문화가 차차 생기면서부터는 밴드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곤 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악을 하게 됐고요…” 우리학교 철학과 93학번 선배이고 「음악감상실」 DJ이기도 했던 그는 “한림대 캠퍼스 나름대로의 분위기가 좋아서 수업을 안 듣더라도 학교엔 올라갔어요. 1·2학년 때는 특히 학생회나 운동권에 있는 친구들이 많아서 어디를 치러가네 마네 말도 많았고요. 제대를 하고 복학해보니 건물도 많이 생기고 학교가 엄청 변했더라구요. 그 땐 여느 복학생들과 비슷하게 학교 흐름에 잘 따라가지 못해서 주로 「음악감상실」 DJ 생활만 했죠. 거기엔 음반도 많고, 음악을 듣다 보면 내 시간도 찾을 수 있어서… 딴 애들 취업 준비할 때 정신 못차린 거죠”라며 웃음 띤 얼굴로 대학생활을 회상했다.

  우리나라 인디밴드를 대표하는 크라잉넛은 다른 인디밴드들보다 대중들에게 비교적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네 멤버가 군복무로 활동을 멈춘 상황(하지만 동반입대한 네 멤버는 군악대 활동으로 끊임없이 음악을 하는중이다)에서도 그들이 가장 최근 발표한 4집은 꾸준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미 「말달리자」, 「밤이 깊었네」와 같은 곡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그러한 크라잉넛의 인기에 대해 “글쎄, 인기가 있는지 난 아직 잘 모르겠는데…”라며 겸연쩍게 웃던 그는 월드컵 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솔직히 축구를 정말 싫어하는데, 그 땐 좀 많이 놀았죠. 축구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서 국민들과 단합하고 조직을 이뤄 놀 수 있어, 크라잉넛 멤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도 재밌어 했습니다”라며 열광적이었던 그 때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고정팬이 많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우리는 따로 팬이란 개념이 없어요. 우리의 공연장은 언제나 열려있고, 그때그때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다르니까요. 공연이 끝나면 마음맞는 사람끼리 술 한 잔 할 수도 있는 거죠”라 말하며 순수한 음악인으로서 관객과 교감하려는 모습을 보여줬다. “우리가 큰 물에서 놀기 싫어서 인디로 남아있는게 아닙니다. 인기가 있다는 이유로 메이저 음반사에 소속된 후에는 하고싶은 음악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죠. 시작의 발판에서 벗어나는 것이 싫어서 클럽 공연을 계속 하는 것이고요. 인디밴드들이 실력이 안 돼서 메이저 음반사에 못 가는게 아니기 때문에 다들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갖고 음악을 하죠”란 그의 말은 우리나라의 어두운 대중음악 현실에서도 한줄기 희망을 느끼게 한다.

  이미 인디밴드 중에서는 내노라할만한 그룹들인 『레이니썬』, 『미서니』등 인디밴드의 세션을 맡았고, 크라잉넛에는 3집때부터 합류한 그가 가장 애착을 느끼는 앨범은 크라잉넛 4집 『고물라디오』라고 한다. “최근에 나온 4집에서는 멤버들도 군대가기 전 마지막 앨범이라 자신들의 취향을 노골적으로 많이 드러냈죠. 특히 4집의 『빽구두』란 곡은 제가 처음으로 작곡한 곡이라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기도 하고요”

  그는 이제 그동안 실험해본 적 없는 장르를 개인 음반작업을 통해 시도할 작정이다. 4월이나 5월쯤에 완성될 개인 프로젝트 앨범을 앞두고도 그는 “개인적인 음악 활동보다 밴드생활이 훨씬 많은 매력을 지니고 있어요. 자신만의 음악을 하기 위해 인맥이나 돈으로 사람을 구해서 하는 음악과 인격체들끼리 모인 한 밴드 안에서 싸우고 힘들어하면서 하는 음악, 어떤 것이 더 좋을지는 모르지만 여럿이 함께 했을 때의 결과물이 항상 좋다는 생각을 해요”라며 밴드생활에 변함없는 애착을 보였다.

  감기 때문인지, 그는 인터뷰 내내 앉은 자리에서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그의 진득한 모습은 “철학과 공부가 좋아서 철학과를 택했다”는 그의 말과 어느정도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한림대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예의 진득한 모습으로 말했다. “비록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한다 하더라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목표는 낮출 수는 있지만, 자신의 기호를 속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가령 노래를 좋아하지만 가수를 할 여건이 안 된다면, 돈을 벌어서 노래방을 차리면 되잖아요?”,“대학생들은 하고싶은 일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을 하는 경우가 있죠? 예전에 국어책에서 시계를 잘 만드는데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 저는 시계를 만들면서도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계를 만들어서 돈을 벌고, 남는 시간에 글을 쓰면 되니까요…”

  돌아오는 길에 그가 말한 ‘자신이 하고있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란 말이 계속 맴돌았다. 건강한 정신으로 건강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들처럼, 우리도 무엇을 하든 자신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물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김혜민 기자 khm84@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