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면 그 해를 가름하는 신조어가 탄생하고 유통된다. 모든 국민들의 귀에 익숙한 “부자되세요”가 2003년 키-워드(key-word)였다면, 올해는 잘먹고 잘 살자는 ‘웰빙(Well-being)’과 ‘아침형 인간’이 회자(膾炙)된다.

  `아침형 인간’이라는 생소한 언어가 일반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계기는 사이쇼 히로시의 『아침형 인간 성공기』,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자기관리 경영서가 출간되면서부터이다. 일본에서 10년전 유행했던 경영처세술 책자가 10주 연속 부동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방송과 신문 지면을 장식하면서 어느새 한국에서는 인간 개조의 지침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교과서로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아침형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 논거의 핵심은 간단 명료하다. 거칠지만 저자의 논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인류가 급격하게 야행성 생활에 젖어들면서 불규칙한 생활 리듬, 만성적인 수면 부족 등 병리적인 현상이 만연해 있어 인간의 정신과 건강을 망친다. 사람의 몸은 에너지를 소모한 만큼 보충하고 회복시켜줘야 다시 기능을 할 수 있다.

  일정한 에너지를 소모하면 그만큼 먹어야하고 또 그만큼 자야한다. 그러므로 밤에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활동을 시작하라. 성공한 사람은 한결같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즉,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더 이상 인공 불빛의 시간 패턴에 매몰되지 말고 주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혁신하자는 것이다.

  이렇듯 ‘아침형 인간’이 요구하는 생활태도 및 삶의 철학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상식적인 내용이다. 단순하고 명쾌한 상식적 진리는 신년 벽두, 작심삼일(作心三日)에 좌절한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파고들었고 출판사의 상업적 마케팅은 여기에 기름을 붙여 사회적 의제화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 인간형은 우리가 모르는 있었던 새로운 트렌드가 아니다.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의 ‘바른생활 어린이’의 모습이고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강요한 근면·성실한 우리 노동자, 농민의 생활상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회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문제의 본질에 도달해 보자.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밤낮이 뒤바뀐 채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국가경쟁력과 효율성의 이름 아래 강요된 잔업과 야간노동, 퇴근 시간이 되어서도 상사의 눈치를 봐야하는 월급쟁이들, 수업을 마치고도 밤 12시까지 수용되어 있는 고3학생들… 이들은 ‘아침형 인간’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소수자들인지 꼼꼼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아침형 인간’이 지니고 있는 주장은 분명히 근대적 효율성으로 인간을 재단하고 자본주의 논리로 인간을 개조하려는 위험스런 획일주의적 사고가 내포되어 있다.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 경쟁과 효율보다는 ‘연대’와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은 실현되어서는 안될 사회적 금기인지 우리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한 사회의 흐름과 정서를 규정짓는 어휘는 현실을 반영한 시대정신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다른 한 편 허상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 ‘아침형 인간’ 그 선택은 우리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자.

/ 노광표 사회학개론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