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펄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로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뎠으리라
아―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이 시인의 눈은 어물전 개조개에게 머물러 있고, 이 시인의 마음은 개조개의 삐죽 나온 조갯살과 탁발승의 맨발 사이를 오가며 느리고 부드러운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맨발로 걷는 걸음도 느리고 부드러우며, 슬픔도, 그리고 심지어는 가난도, 느리고 부드럽습니다.

  물론 이 느리고 부드러운 언어도 아름답습니다만, 그러나 정작 제 눈을 오래도록 머물러 두는 것은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는 장면입니다. 한번 머리 속에 그려보세요. 스승의 죽음을 슬퍼하며 제자들이 꺼이꺼이 울고 있는데, 그 위대한 스승은 장난스럽게 깡마른 맨발을 내밀며 ‘굳빠이’ 합니다. 정말로 해맑은 이별 장면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부처님의 이 유머러스한 맨발이 없었다면, 이 시의 느리고 부드러운 언어들도 그다지 빛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문득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가 떠오르는군요. 피범벅된 예수의 처절한 죽음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별은 ‘찢어지는’ 아픔으로 가득하지요. 극단적 형용어들을 아무리 써도 모자를 정도로요.

  처절하게 울부짖는 제자들과 어머니를 위해 십자가의 예수님이 움직이지 못하는 발 대신 발가락을 꼬물거려 ‘굳빠이’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안 되겠지요? 안 되겠지만, 그러나 저는 피범벅된 예수님 대신 이 시의 개조개처럼 느리고 부드러우며 해맑은 예수님을, 부처님의 맨발과 함께 못내 떠올리고 싶군요.

/ 신지연(시인·교양교육부 교양작문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