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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함박눈이영광
김원국 작가  |  diedl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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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4.12.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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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 (이영광)

강의동 현관의 ‘잡상인 출입 금지' 푯말 앞에서 속이 뜨끔해지는 선생
그의 철지난 레퍼토리, 몇 년째 같은 걸 틀고 있지
같은 거밖에 안 주나
가르치기는 하되 ‘쫑'이 없는 사람
이 생 전체가 집행유예이고 무임승차이다
셔틀버스로 고속터미널까지 다시 전철로 종로 3가까지
팔지도 못한 나물 부스러기를 다시 쓸어담는 지하철 계단의 아낙네들
이 생을 보자기에 싸서 어딘가에 버려다오

이번 달 강사료는 흔적도 없이 빠져나갔을 것이다
몸을 먹여 살리느라 방치한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마음은 호수요
내 마음 나도 모르게 가판대에서 뉴 밀레니엄 복권을 사는 선생,
연말은 언제나 파산지경인데 새 천년인데 왜 중력이 있을까,
인간은 벌레나 잡아먹는 새로 진화할 수도 있었을 텐데
벌레 먹고 맴맴 날아다닐 수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 축적한 지적 예술적 반성적 성찰과
세기말의 우울과 첨단의 퇴폐를 잘 노골적으로 비비면
베스트셀러 하나쯤은 써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예술적 거시기를 그런 데 써도 되나
내게 첨단이 있기는 하나
자꾸 뜨끔거리는 허리가 디스크일지도 몰라,
이제 아무 여자와도 잘 수 있을 것 같아
좌판들이 종로통을 수놓듯이 잡념이 뇌를 늘였다 줄였다 하는 동안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욕을 삼키는 선생 씨발, 개떡, 좆도, 하는데
웬 청년 하나가 다가와 아으씨 테프 하나 사쇼, O양 L양 B양 다 있어요 다,
양복 소매를 깜짝 잡았다 놓는다 아니,
이 사람이 벌건 대낮에 선생한테 화들짝 놀라
가방을 덜렁거리며 겅중겅중 뛰어가는 선생,
근데 그는 어떻게 날 알아보았을까 아아 멀리 있는 그대여,
눈 내린다 인간의 시간을 재우려 함박눈 내린다

  한 해의 마지막, 한 학기의 마지막이 다가옵니다. 이것은 학생에게만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경비아저씨에게도 청소아주머니에게도 강사나 교수들에게도, 새벽에 교내를 배회하는 도둑고양이들과 청솔모부부에게도 찾아옵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그리는 연말의 풍경과 실제 연말의 풍경이 꼭 같을 수는 없습니다.

  울적한 연말, 누구 누구 누구가 아무리 상처가 가득하고 마음 아프더라도, 신나는 연말, 누구 누구 누구가 아무리 맘이 기쁘고 좋아죽겠더라도, 다 같은 연말입니다. 깜깜한 밤에 하얗게 함박눈이 내린다면, 알바생도 사장도 할머니도 개들도 도둑도 경찰도 파티플레너도 홀아비도 새색시도 과부도 여관주인이나 택배배달원도 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힘을 내어서 ‘무임승차'를 계속하고, ‘집행유예'를 연장하면서, ‘씨발, 개떡, 좆도' 욕도 가끔 하면서 새해를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 김원국(국문·4년) 2004년 계간지 시인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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