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쁘게 지나온 우리 젊은 날의 한 계절이 문을 닫는다. 맵찬 겨울 바람 탓에 교정을 오가는 발걸음도 한결 뜸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만큼 숨차게 생명의 향연을 펼쳐왔던 나무들도 이제 푸른 잎을 떨구고 차분해졌다. 겨울나기를 준비해야 하는 까닭이다.

  학생회관에서 일송아트홀 쪽으로 오르는 언덕 길. 잠깐 멈춰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거인처럼 우뚝 서있는 한 그루의 융융한 나무가 있다. 도심의 길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플라타너스다. 그러나 저자거리의 플라타너스와는 달리 무척 아름답게 자랐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미국, 남유럽이 고향인 플라타너스는 그 무성한 가지와 넓은 잎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나무다. 게다가 빠르게 자라는 특성 때문에 도심의 환경을 푸르게 하기 위해 알맞춤한 나무다. 줄기에 생기는 담록색이나 크림색의 얼룩이 마치 얼굴의 버즘과 같다 하여 버즘나무라고도 부른다.

  이 아름다운 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심는 데에는 또 하나의 까닭이 있다. 잎의 뒷면에 촘촘히 박힌 미세한 솜털이 대기 중의 먼지, 매연 등을 빨아들이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 공기 정화용 나무로 더 없이 훌륭한 나무임에 틀림없다.

  나무는 맑은 산소를 내줄 뿐 아니라, 먼지와 매연을 정화하는 역할까지 하며, 사람살이를 맑고 아름답게 한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나무가 해마다 겨울이면 흉측한 몰골로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나무로 변신하게 된다. 사람들은 나무가 워낙 무성하게 자라나다 보니, 교차로의 신호등이나 교통 표지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가지를 쳐내는데, 그게 너무 심하다 싶은 것이다. 가지 몇을 잘라낸다 하더라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봄이 되면 다시 무성하게 가지를 뻗어내기는 한다. 그러나 가지를 다 쳐내고 뭉뚱하게 남은 겨울 도시의 플라타너스는 도저히 눈뜨고 보기 힘들 만큼 괴이쩍다.

  교정의 플라타너스는 시내에서 자라는 플라타너스처럼 무자비한 가지치기의 톱날을 피했기에 나무 본연의 아름다움을 갖추었다. 굳이 나무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저 가만히 놓아두기만 한다면, 이처럼 아름답게 자랄 수 있는 게 바로 나무고, 자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