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얘기되듯이 춘천 주변의 빼어난 경관은 세계 어느 도시 주변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우리의 자랑이다. 동으로는 속초로 서로는 서울로 통하는 대룡산 중턱의 외곽 도로에 올라서면 춘천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푸르고 맑은 가을 하늘 아래에 선 춘천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풍경은 춘천이 가진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름다움 그 자체가 가져다 주는 삶의 풍요로움이라는 면에서도 그렇지만, 이는 관광과 문화산업 증진의 토대가 될 귀중한 자산인 것이다. 그 외곽도로에 올라서 보면 춘천의 절반을 소양강과 북한강이 가로질러 흐르고 있고 그 아래 우뚝 솟은 봉의산이 보인다. 넓은 평야 위에 소롯이 솟은 봉의산의 자태는 그 찬연한 기상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참으로 조화로운 강과 산의 어울림이 아닐 수 없다.

  봉의산은 소양강 이상으로 춘천의 상징이 되어 마땅한 훌륭한 산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좋은 산의 기슭에 우리 한림대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학교 교정의 한 복판 다비드상 앞에서 춘천을 내려다 보면 아담한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크게 아름다운 정경은 아니지만 소박한 소도시의 모습이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 산들의 굴곡이 훌륭한 정형미를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한 것은 멋없이 삐죽삐죽 솟아오른 고층 아파트들이 이 시가지의 정경과 낭만을 돌이킬 수 없이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시가지 남쪽을 가로지르던 것이 모자라서 우리의 토지개발공사(혹은 토지 ‘파괴’공사)는 남아 있는 언덕들을 깎아내리고 돈장사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뒷산인 봉의산도 열심히 훼손되고 있다. 중도 쪽에서 보면 청와 아파트가 좋은 그림에 불쑥 뛰어들어 훼방질을 하고 있는가 하면 동쪽에서는 세경 아파트와 동산 아파트로 모자라다는 듯이 또 무슨 고층 아파트 공사가 열심히 산을 가로막고 있다. 이제 멀리서 봉의산을 바라보기는 영영 틀린 듯하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봉의산 훼손의 주범은 우리 한림대학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면 쪽에서 차를 타고 오다 보면 주운동장을 짓느라고 깎아내린 봉의산의 자락이 처참하게 보인다. 아직 나무도 심지 않고 스탠드를 만들어 놓은 봉의산 기슭은 조형미가 완전 망가졌을 뿐 아니라 그 색깔도 완전히 죽어 있다.

  이 때문에 춘천 시민들로부터 많은 불평을 듣고 있음도 사실이다. 고민은 우리 옥천동 캠퍼스의 부지가 워낙 협소해 이를 넓히는 길은 산을 깎는 것밖에 없다는 데 있다. 나는 우리학교에 재직하는 교수로서 캠퍼스의 확충에 대해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할 입장이다. 그러나 또한 춘천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봉의산의 훼손은 적극적으로 반대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이기도 하다. 지금 봉의산은 산허리가 완전히 잘려 윗 봉우리의 반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더 이상의 훼손은 후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요사이 서울에서는 남산 살리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10-20년쯤 후에 봉의산 살리기 운동이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때 가서 남산의 외인 아파트 같이 폭파돼야 할 건물은 과연 어떤 건물일까? 생각하면 오싹해진다. 아까워서라도 폭파하지 못하도록 건물이라도 잘 지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건물을 지을 때 산의 훼손을 극소화 할 방도를 찾는 일이다. 곧 사회과학대학 건물을 착공한다고 하는데, 소속 교수로서 반가운 일이지만, 학교당국은 이러한 ‘비애교적(非愛校的)’인 걱정도 고려해 주었으면 한다.

/ 김영명(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