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대선 후보 이회창씨 장남의 병역 비리 논란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연일 수사 속보가 터져나오고 있으며 새로운 증거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른 정치권의 공방 또한 지리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은 대선과 상관없이 명료하고 신속하게 처리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 병역 비리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게다가 소위 ‘힘있는’ 상류 계급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점에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늘 병역 문제에 관련해서 자조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들의 사건에 대한 조속한 처리 요구를 도외시해서는 안될 일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이 사건을 정치 공작이라 주장하며 법무장관의 해임을 결의하는 풍경은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한 몫 거드는 일부 언론 또한 다름아니다. 정치적 사안의 문제를 벗어나더라도 우리 학생들에게 있어 병역 문제는 상당히 중요하다.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그에 따른 행정 처리를 위한 시간도 매우 번거롭다. 군생활 도중에도 개인 생활이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 군대의 형편이나 사상적 유통을 가로막는 폐쇄성으로 인해 그 단절된 기간 동안은 청년기에 매우 큰 손실일 수 있다.

  이렇듯 그 기간동안의 지적 공백을 메우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지적 활동력이 가장 왕성하고 활발한 시기에 2년 2개월동안 군복무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얼마전 보도된 황일병 사건을 보더라도 알 수 있지만 군생활은 그 특성상 일상 자체가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 아들만은’군에 보내지 않겠다는 생각을 뒤켠에 갖고, 입으로는 ‘신성한 국방’ 운운하는 것이 어디 설득력이 있겠는가.

  우리 사회의 지적 스펙트럼이 다양화되고 시민 사회가 다양한 경로의 의견들을 수렴함에 따라, 언제나 신성한 영역으로 간주되어 ‘함부로 말하기 겁내’하던 군복무 문제도 서서히 논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지껏 병역 거부 문제는 특정 종교의 문제였으나 얼마전 부산의 한 대학생을 위시한 여러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평화와 양심에 의해 병역을 거부한다고 밝혀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 뜨겁게 논란이 오가고 있다.

  이러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주장은 “동족에게 총을 겨눌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병역의 의무에 대해 본질적 의문을 품게 됐으며 전쟁반대와 평화실현을 위한 양심을 지키고자 병역거부를 선택했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다른 영역에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국가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회 일각에서는 이러한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있고, 러시아에서도 얼마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 복무제가 도입되어 있는 실정이다. 누구나 꺼리는 군복무를 자신의 혹은 친인척의 권력을 남용하여 피하고자 함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리 언급했지만 이회창씨 장남의 병역 비리 사건은 명확하게 처리하여 전말을 꼼꼼하게 밝혀야한다. 또한 이것이 정치적인 사안으로만 논의될 것이 아니라 병역 문제에 관한 좀더 근본적인 논의로 진전하여, 우리 학생들이 청년기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