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한글날을 맞이해 각 일간지 등이 발표한 통계숫자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글과 말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세계에서 고유한 문자를 가진 민족이 몇 안 되는 상황에서 한글날이 국경일에서 제외된 사실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글과 말에 대한 무관심과 푸대접은 이미 정도를 넘고 있다.

  언어는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형성하고 전달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며, 어떠한 말과 글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개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나날이 거칠고 조악해지는 것은 비단 세상살이가 점점 각박해져서 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글과 말에 대한 애정결핍이라는 심각한 질병 때문이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질병에 이제는 무감각해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소위 세계화 시대에 영어를 못하면 낙오될 것을 염려한 젊은 부모들은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미 영어교육에 돌입하며, 아기가 우리 말을 제대로 배우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아이들보다 혹시 늦게 영어를 익히게 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아이들도 학교에 가면서부터는 자신들끼리만 통하는 은어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으며 보다 많은 은어를 알고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언론매체들도 그러한 국어파괴작전을 선동하거나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도 제대로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글로 옮기는 것에는 취약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강의시간에 교수의 질문에 대해 논리적인 답변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학생이나 앞 뒤 없이 외국어 단어만을 무참히 쏟아 내놓는 교수는 그 극단적인 현상의 일면이다. 대자보나 포스터에서 잘못된 문장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생들의 입에서 상스러운 말들이 예사롭게 나오고 오히려 그것을 인간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지금 한번 자신이 어떠한 말과 글을 사용하는지 점검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다음주가 중간시험기간이기에, 이번 주동안 학생들은 시험준비에 바쁠 것이다. 물론 시험 범위에 들어가는 내용 자체를 익히기에도 시간이 모자랄지 모르지만, 어떻게 제대로 된 문장으로 표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학생들이 마치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 같은 문구를 작성하거나 도대체 문장이 되지 않는 단어들을 잔뜩 나열하고서는 답안지 하나 가득 써 내려간 자신의 실력에 만족해하는 것을 본다. 채점하는 입장에서는 이를 해독하고 평가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아무리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많은 내용을 머리 속에 넣었더라도 이를 정확한 글로 풀어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부디 이번 중간시험에서는 크게 애쓰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답안지를 많이 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