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의 학부제는 교육부의 유도 정책에 힘입어 98년 3월 생명과학부의 탄생으로 시작되었다. 학부제 시행 후 7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학과제로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 2004년 올해부터 지역학과군의 중국, 일본, 러시아 학과는 이미 학과제로 회귀한 상태이다. 학부제 분위기가 무르익던 무렵 본인은 교수 세미나 자리에서 학부제와 학과제의 장단점에 대하여 발표하였다.

  학부제에서는 신입생들이 대학 1학년 동안 각 전공에 대해 좀더 심도 있게 생각하고 판단하여 전공을 결정하게 되므로, 학생들에게 폭넓은 선택의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또한 각 전공의 선호도가 매년 변화하는데, 그 충격을 학부제라는 울타리로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하지만 학부제를 실시해 본 결과, 대학 1학년 동안 소속감이 결여되어 방황하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지원율이 낮은 전공은 학생수의 감소로 재정적 불이익을 당하게 되었다.

  학부제로 모집단위를 변경한 당시 학부제로 모집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교육부의 달콤한 당근의 유혹, 즉 지원금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교육부는 또 당근을 내놓고 지방분권 방향으로 대학을 몰고 가고 있다. 오늘 점심시간에 교육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소위 “누리” 사업, 즉 지역역량사업을 위한 회의에 참석하였다. 이 사업은 대학을 중심으로 지역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그 목적인데, 지방사립대인 우리 학교로서는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하겠다.

  오늘 회의는 이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 교육부가 요구하는 교원확보율을 어떻게 만족시켜 나갈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입학정원을 줄이거나 교수를 더 뽑거나 하면 되겠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었다. 교수를 더 충원한다면 학교에 재정적 압박을 줄 것이고, 교수들은 강의 책임시간 9시간을 채우기 힘들 것이다. 입학정원을 줄인다면 강좌 당 학생수가 줄어 교육의 질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겠지만, 역시 교육부의 지원이 끝난 5년 후 재정적 부담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강의 책임시간을 6학점 이하로 줄이고 등록금을 인상하면 문제는 해결되겠지만, 매년 등록금 인상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는데 그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어떠한 체제가 학생들에게 좋고 학과 발전에 유리한가 여유 있게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각 전공이나 학과의 생존문제가 달려 있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본인이 대학 입학할 당시 수험생이 100만에 육박되었으나, 2002년 출생아는 49만에 불과하다. 대학 지원자의 감소를 예상하지 못한 교육부가 마구잡이 대학 설립 허가가 야기한 사태이지만, 이러한 위기를 극복해야만 우리는 생존할 수 있다. 이제 정원을 못 채우고 도태되어 가는 대학들이 속출하고 있고, 결국에는 문을 닫는 대학이 생길 것이다. 우리 대학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지러운 정치판 같이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고, 한림 구성원 모두 힘을 모을 때이다. 좀 어수선하지만 캠퍼스에 울려 퍼지는 도서관과 교문 건설 현장을 내려다보며 Top 10 한림대의 도약을 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