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학은 아름다운 도시 춘천의 한 가운데에 있는 봉의산 숲 속에 자리하고 있다. 많은 나무들이 함께 어울려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는 곳이 바로 숲이다.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에 관한 성경 창세기의 글은 인류 생명과 문명의 원천이 숲임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한림(翰林)은 “글의 숲”이라는 뜻으로 직역이 된다. 한림은 곧 언어를 사용하여 문화를 물과 영양분을 흡수해 열매를 맺는 생명의 숲을 뜻한다.   숲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숲을 이루고 있는 하나하나의 나무들이다. 물이 말라버린 사막과 태양의 빛이 부족한 지하동굴이나 심해에서 그리고 공기가 희박한 고산지대에서 우리는 울창한 숲을 기대할 수 없다. 생명의 빛, 물 그리고 공기가 없는 그곳에 생명체인 나무가 있을 수 없음은 당연하다.

  한림의 숲에서 가장 중요하고 귀중하게 여겨야할 것은 기자재, 수돗물, 전기 또는 건물과 같은 물질들이 아니라 한림 구성원 개인들의 생명감과 자긍심이다. 생명을 이어가기에 좋지 않은 상태의 숲 속의 나무들은 그 자리에서 말라 죽어갈 수밖에 없지만 사람들은 환경을 개선할 자신의 노력이 실패할 경우 다른 울창한 숲으로 생명의 나무를 찾아 이동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한림대학의 구성원이 되어 10년이 지났을 때 행정실의 직원에게서 장기근속기념의 금배지를 가져가라는 전화를 받고 아무 말없이 받아온 적이 있다. 한겨울에 사무실 난방이 5년간 제대로 안되어 영상 10도에서 덜덜 떨며 히터 옆에서 몸을 데울때는 정말 한림의 숲은 얼어붙은 사막같은 느낌이었다. 결국 온풍기 2대를 사서 실험실에 하나 사무실에 하나를 두고 추위를 참을 수 없는 생명체임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데 책상 걸상 한번 새롭게 바꾸지 않고 근무한 사무실에 사용되지 않은 채 수년이 지난 SECOM은 참으로 사치스런 장식품처럼 느껴졌다.

  최근 Smart Card인가 하는 새로운 보안 시스템을 방마다 설치했는데 한림을 떠나가는 사람들을 막을 수 있는 “인재의 숲 보안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는 신기한 장치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편, 몇몇 행정부서들에 설치되어 있는 에어콘, 최신 패션의 책상과 걸상 그리고 냉장고를 볼 때 이제 인재를 아끼는 한림으로 변모하는 것을 체감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행정의 말단에까지 변화가 올때는 아마도 은퇴한 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방대학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대학원 학생들을 입학시켜 그들의 등록금, 기숙사 비용, 나아가서는 방세 보증금 그리고 건강보험이 없는 외국인 학생의 의료비를 마련해주면서까지 연구를 수행해온 동료 교수들이 감사원 감사에서 도둑놈 취급과 협박을 받아 초죽음이 되어있는 것을 보았을 땐 진정 빛이 완전히 사라진 깜깜한 동굴에서 물과 영양분, 공기가 차단되어 시커멓게 말라죽어가는 한림의 나무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우수한 나무들이 한림동굴속에서도 발견되었다니 참으로 기적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림은 공식적으로 “시대를 이끄는 높은 안목과 지혜를 갖춘 한비정신(翰飛精神)의 선비들”이 있는 곳으로 매우 고상하게 뜻풀이가 되어 있다. 이제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는 즈음에 우리들은 혈거유적지의 동굴에 갖혀 봉황을 꿈꾸는 핏기없는 비현실적인 선비의 모습을 박차고 생명의 빛과 물이 있는 봉의산으로 나와서 숲을 가꾸는 농사꾼이 되어보자. 우리 모두 한 그루의 나무도 큰 숲을 이루는데 빠질 수 없는 귀중한 생명유기체로 아끼고 사랑하는 한림 생명의 숲 가꾸기 운동을 열심히 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