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똥칠할때까지 살아라’ 학창시절 한 친구가 험담으로 내게 하던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에 웃음으로 답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그런 ‘벽에 똥칠하시는 분’들과 살고 있다.

  나는 2003년 2월20일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노화학과정 학과 학위를 취득하고 졸업했다. 그리고 현재 인천에 있는 「낙원양로원」에서 일하고 있다. 10년 전 이 양로원과 맺은 인연은 결국 내가 사회복지를 전공하게 된 중요한 동기가 됐고 급기야 이 곳에 취직까지 하게 됐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지 벌써 네 달째…….

  나는 이곳에서 매우 많은 종류의 일을 한다. 행정업무부터 밥, 빨래, 청소 등의 잡다한 일들을 한다. 흔히 양로원은 건강한 노인들이 공동 거주하는 곳이 많지만, 내가 일하는 이곳은 이름만 양로원으로 치매, 중풍의 중증 환자들이 많이 생활하는 사실상 요양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노인들을 돕는 일이 업무 중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사무실과 내 책상이 있지만 내 일은 결코 사무직은 아닌 것 같다. 내가 하는 이런 일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은 목욕이다. 내 몸을 씻는 일이 아니라 노인들을 씻기는 일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치매, 중풍 노인들이 무척 많은데 그분들의 목욕을 돕는 일은 무척 힘들다. 중풍 노인들은 몸을 가누기가 힘들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일을 도와주어야 하고, 다리를 못쓰시는 분들은 휠체어로 목욕실과 방으로 옮겨드려야 하기 때문에 단체 목욕날 저녁에는 팔이 시큰거리기가 일쑤다.

  하지만 중풍노인들을 수발하기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치매 노인만큼은 아니다. 치매 노인들은 수치심 때문인지 옷을 벗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기 시작하면 10분이고 20분이고 실랑이가 시작되는데 노인들을 잘 다독거려 ‘목욕 작업’에 착수하지 않으면 이 노인들이 손, 팔 할 것 없이 사납게 할퀴곤 한다. 어느 재미있는 오락만큼이나 스릴만점이다. 그렇지만 다 씻겨드리고 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허허 웃으며 고맙다고 하신다. 그러고 나면 너무 고생스럽게 만들어 미워하려던 마음까지 다 씻겨져 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때 나를 부르는 호칭은 매일 바뀐다. ‘에미야’, ‘아가씨’, ‘엄마’ 등등…. 부르고 싶은데로 불러 버린다.

  호칭 이야기를 하니 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양로원에서는 나를 ‘복지사’라고 부르는데 이를 듣고 새로 오신 할머니가 나를 부르기를 ‘복실씨’란다. 내 이름과도 전혀 비슷하지 않은 이런 이름으로 불리우는 재미도 힘든 일들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늘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양로원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종종 생기곤 한다.

  매일 집에 간다며 자신의 옷을 잘라 보자기를 만들어 자신의 옷가지들을 싸는 할머니, 방에서 대변을 보고서 창틀과 장판밑에 넣는 것도 모자라 방바닥과 벽에다 발라놓는 할머니, 방에서 사용하는 소변기에 옷이며 생활도구들을 넣어두는 할머니, 화장실에 비치된 모든 신을 다 주워가버려 화장실이 급한 사람들이 신발이 없어 낭패를 보게 만든 할머니, 동네를 돌아다니며 밥을 얻어먹고 다니는 할아버지, 집에 가야 한다며 늘 양로원을 나가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할아버지…….

  이 사람들은 내 가족들이고, 이 가족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힘들지만 웃으며 지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이렇게 매일 ‘벽에 똥칠하고’ 말썽부리는 노인들의 엉덩이를 때리면서 목욕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주면서도 웃음이 난다.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랫동안 노인 가족들과 함께 살 것이다.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말이다.

(다음 수필 주자는 현재 강릉 MBC 방송작가로 근무하고 있는 심리학과 98학번 고현주(2002년 졸업)씨입니다.)

/ 홍은영(사회복지사, 사회복지학과 99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