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쌤이다. 멍멍멍 강아지 쌤이 아니라, ‘선생님'을 줄여서 쓴 ‘샘'의 ‘쌤'이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 직업은 간단한데 하루의 동선이 좀 복잡한 편이다. 원래 잠이 많아 이불과 베개에 붙어사는 걸 유일한 낙으로 알고 있는 나이지만 일주일에 4번은 아침 7시에 일어난다. 이런 저런 준비를 하고 집 근처에 있는 학교로 7시50분까지 간다. 짱알짱알 말도 많고, 호기심도 많은 아이들과 정신없는 아침을 보낸 후에, 지역 주민을 위한 평생교육 프로그램 자원봉사를 한다.

  미혼인 아가씨부터 호호백발의 할머니까지 정말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기 때문에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영어를 모르는 분을 위해 영어도 가르쳐야 하고, 한글을 모르는 분(믿어지지 않지만 실제로 있다)에겐 그림으로 그려서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종강하는 날엔 모두의 얼굴에 ‘나는 무언가 해냈다'라는 반짝임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 얼굴 때문에 그 수업은 몸이 피곤하고 중앙선이 다섯 개로 보여도 놓을 수가 없다.

  그렇게 자원봉사를 마치면 바글바글 올망졸망한 초등학생들과 반나절을 보낸다. 온 몸을 내던지며 집에 가고 싶다고 울부짖는 아이, 난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며 어려운 걸 알려달라고 하는 아이, 화장실이 바로 옆인데 미처 묻지 못하고 그냥 실례하는 아이... 게다가 가끔씩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와 수업을 잘하고 있는지 온화하게 한 바퀴 돌고 가시는 분들도 계신다.

  처음엔 정말 당황했는데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그 아이들을 모두 포용하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차분하다기보다는 뾰족뾰족한 성격, 속된 말로 ‘욱!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화가 많이 났다. 그렇지만 이젠 노련해졌다고 할까 5년 간의 내공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때론 따끔하게 혼내기도 하고, 때론 부드럽게 달래기도 한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반나절을 마치면 저녁 수업이 기다리고 있다. 각종 자격증 취득을 위한 필기와 실기 수업을 세 시간 동안 진행하게 된다. 높은 비율은 아니지만 대개 80% 이상의 합격율을 낸다. 이것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여기에서 끝이 나는 듯 하다. 하지만 나는 해야할 일이 아직 더 남았다. 수업을 진행하는 시간 이외의 준비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간 수업을 위해 세 시간은 공부해야 한다. 모르는 내용이라서가 아니다. 교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만 읽으면 내용과 순서를 줄줄 꿸 수 있다. 문제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어떻게 알려줄 것인가, 바로 어떻게(HOW)가 문제인 것이다. 수강생이 늘 바뀌기 때문에 그들에게 맞는 강의법을 찾아야한다. 덕분에 늘상 새벽 1시를 넘겨서 잠들게 된다. 이렇게 쌤으로서의 고단한 하루는 마감을 하는 것이다.

  가르치는 일 이외에 컴퓨터 관련 서적을 만드는 영진닷컴이라는 회사의 수험서를 봐주고 있다. 이 일은 회사와 맞물려 함께 일하는 것이라 스케줄과 마감일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시간에 많이 쫓기는 작업이지만 가르치는 일 못지않게 굉장히 짜릿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내가 지방에 있는 관계로 일정보다 이틀 정도 적게 잡고 일에 착수한다. 덕분에 더 짧은 시간 안에 같은 작업을 마치느라 밤을 샐 때도 허다하다. 그렇지만 내 손을 거쳐 출판된 책을 받아들었을 때, 그 책을 서점에서 만났을 때, 그 책을 갖고 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 마치 내 자식을 보는 것처럼 뿌듯하고 흐뭇한 미소가 얼굴을 뒤덮는다. 또, 일년에 거의 수십 차례 자격증 시험이 있다. 그 시험을 치루기 전에 각 출판사에서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모의고사를 출제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과목에 대한 기출 문제 분석과 새로운 경향의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수백 수천의 무수한 가능성들 중에서 달랑 60문제만을 뽑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대개 열흘 정도의 시간을 갖고 출제를 하는데, 출제한 문제를 더 좋고 더 나은 문제로 바꾸고, 바꾸고, 바꾸기를 수도 없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시험이 치러지고 내가 출제한 문제들이 적중했을 때는 무수히 샜던 하얀 밤들을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오늘도 어쩐지 밤샘을 해야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지금도 책상 위에는 '토요일 마감'이라 표시된, 책이 되길 기다리고 있는 원고 뭉치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 릴레이 수필 주자는 컴퓨터공학과 2000년 졸업생 이재영씨입니다.)

/ 이영숙(출판 프리랜서, 컴퓨터 공학과 98년도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