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신한국당이 단독으로 날치기 통과시킨 노동관계법으로 인해 국민들은 현 정권을 불신하게 됐고 이로 말미암아 사회는 크나큰 혼선을 빚고 있다. 노동자와 학생들은 총파업 현장에서 정부에 대한 투쟁을 계속적으로 연대했으며, 사회의 각계각층은 시국성명서를 발표해 신한국당의 반민중적 처사에 대해 항의 집회를 벌이고 있다.

  이렇듯 정국을 파국으로 몰아갔던 노동 관계법이 지난 8일 여야가 합의안을 내놓게 됨으로 일말의 해결을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이 합의안에서 야당은 여당과 별 다를 게 없는 안건을 통과 시켰다. 이 과정에서 야당은 노동자의 편인 양 여당을 비난했지만 대선을 앞두고 재계를 의식해서인지 여당과 ‘주고 받기식’의 정치적 절충안을 내놓았다. 야당의 배신으로 통과된 이번 합의안은 지난해 개악된 노동법에서 몇 글자만 바꾸어 놓은 여야의 ‘굿판’이며 이것은 엄연한 제2의 개악이다.   

  이번 합의안에서 교직원·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이 세계 여러 나라가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임에도 불구하고 제외된 것은 노동자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정부의 정치적 계략이 아닐까？ 그 외에도 대체근로제의 적용을 동일사업장에서 동일사업으로 확대해석했으며 쟁의기간 중 임금 지급요구와 관련된 쟁의에 대해 사법처리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더구나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함은 물론이고 집회의 자유마저 법적으로 저지하려 하니 이것이 진정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인가? 회의마저 든다. 정리해고제의 경우만 보더라도 해고의 요건을‘긴박한 경영상의 사유’라는 모호한 의미로 규정하고 2년의 시행유예를 두었다. 하지만 이것은 재계의 주장만이 받아들인 것에 불과해 정리해고의 근본적 불안인 대량실업 및 대량해고를 기정사실화함으로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한편 ‘무노동 무임금’을 앞세워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자본가 논리가 받아들여진 개정안은 한보 비리사건을 생각해 볼 때 야당역시 자본가와 상부상조해 한몫 챙기보겠다는 심보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김영삼 대통령은 담화문을 통해 새 노동법은 근대화·권위주의시대의 낡은 틀을 벗어버리고 21세기 정보화·세계화시대에 걸맞는 골격을 갖추었다고 말했지만,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개정이 아닌 모양 갖추기에만 급급했던 개정안일 뿐이었다. 이번 여야 노동법 합의안으로 인해 이미 국민들은 여야 모두에게 등을 돌리고 말았으니, 앞으로 다가올 대선의 심판대 위에 서게 될 여야 대선 후보자들이 고배의 쓴 잔을 당당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 이은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