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YS다운 행동이었다. 날치기통과로 복수노조 결성의 기본권리를 빼앗아 가더니, 온 나라를 한보사태 소용돌이로, 현철씨 사태로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또 야당시절에 재벌로부터 돈을 받으면 ‘자신의 주머니’로 집어넣는데 그보다 빠른 사람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결국 자신만 빼고 아들뿐 아니라 자신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에게 올가미를 씌웠다. 물론 훗날 ‘보상’을 약속했겠지만 말이다.

  국민에게 용서를 바라는 대국민 담화에는 잘못에 대한 참회는 없었고 잘못을 잊어달라는 내용만 들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식이 저지른 잘못이 만천하에 드러났어도 아직 자식을 다스리는 매를 들지 않는다. YS는 한보사태와 현철씨를 통해 자신이 주창한 ‘문민의 정캄와 ‘세계화의 경제’가 어떤 것인지 국민에게 일깨워 주었다. 황장엽 망명사건을 보면 대한민국이 살만한 곳인가를 다시 생각해본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정치가 실현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보장이 남의 나라 만큼 돼 있는 것도 아니며, 자본주주의 룰이 잘 지켜져서 열심히 일하면 집장만하고 먹고 살만한, 그런 나라도 아니다. 이한영 피살사건을 보라. 북한에서 어느 정도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그가 이곳에 와서 계속된 사업실패와 사기에 휘말려 남의 집에 얹혀 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부인과 이혼하고 유가족으로 딸을 남겼다는 소식이 나를 무엇보다도 곤혹스럽게 한다.

  이는 ‘흡수통일’후 북에서 온 사람들이 자본주의 시장논리를 배우면서 겪게 될 전형적인 모습으로 예상된다. 물론 황장엽 비서의 망명을 신청한 이유가 북한과 한국을 모두 구출하기 위한 실존적 결단이었다면, 머지 않아 우리는 50년만에 또 다른 ‘김구의 비극’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남과 북은 깊은 불신에 빠져있다. 이는 기득권층들이 각자의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황장엽 비서가 남북관계의 새로운 봄의 전령이, 혹은 남북통일의 밀알이 되기를 희망한다. 한쪽은 식량부족에 의한 기아에 허덕이고, 다른 한쪽은 넘쳐나는 음식물쓰레기를 처치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반도에 도대체 ‘동포의식’을 찾아 볼 수 있는가? 이젠 동포라고 부르지말자. 다른 나라도 이보다 나을 것이다. 북한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식량은 커녕 다른 나라가 주겠다는 식량도 주지 못하게 훼방놓겠다는 남한, 생색내며 주는 남한의 식량은 받지 않겠다며, 그래도 ‘어버이 수령 덕분에 배불리 먹고 산다’고 외치는 자존심 높은 북한, 모두 마찬가지 이다. 밉지만 그래도 형다운 형이 보기 좋지 않는가? 형만한 아우가 없다지 않은가? 가진자가 베풀 일이다.

/ 김인영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