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든 언뜻 눈을 들어 바라보면 고향의 어머니처럼 넉넉하게 눈을 맞춰주는 봉의산이 이제 춘천 시민들로부터 차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봉의산을 마주할 때의 그 시원한 눈맛을, 탁 트이는 가슴을, 한결 여유로와지는 마음을 우리는 더이상 누릴 수 없게 될 지 모른다. 기왕의 개발 삽질 때문에도 봉의산은 이미 신음하고 있는데, 삐죽 솟은 고층 건물들이 사방 팔방에서 봉의산을 가로막고 할퀴게 될 판이다. 현재 춘천시에 허가신청된 대로 15층 건물 6개동 290세대의 아파트가 구강원중학교 자리에 들어선다면 봉의산은 아예 숨통이 막혀버릴 것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이 인간이 쳐놓은 덫에 걸려 할딱거리며 죽어가는 모습이 눈에 아른하게 떠오른다.

  이디푸스가 다스리던 테베에 역병이 닥친 것처럼 우리학교에 흉흉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봉의산의 위기는 그 자락에 자리잡은 우리학교의 위기이기도 하다. 우리학교가 터는 넓지 않지만 그래도 좁고 갑갑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우리의 시야가 트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전 골조를 드러낸 지근의 극동 아파트 때문에 시원스런 소양강 물줄기를 향한 우리의 시야는 이미 절반이나 가려 외눈박이가 된 것만 같다. 이런 차에 바로 눈 앞에 고층아파트가 선다면 우리는 장님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의 두 눈알이 뽑히고 있다. 이에 비하면 아파트 건설로 우리의 교육,연구 환경에  크나큰 지장이 초래되고 주변 교통이 극도의 혼잡을 빚어질 것은 손발의 생채기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이디푸스는 두 눈을 잃고서야 깨달음을 얻는다. 두 눈이 멀쩡할 때 그는 사실 아무 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우리는 이디푸스를 닮았지만 그와는 달라야 한다. 우리는 실명의 위기에 봉착하면서 비로소 우리가 봉의산과 함께 호흡해왔음을, 봉의산과 우리의 운명이 하나임을 깨닫는다. 
 

  사태가 이런 지경에 이른 데에는 우리학교가 반성해야 할 부분 또한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물론 교육기관과 아파트를 같은 건물로 단순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도 우리학교가 봉의산을 아끼고 지키는 노력에 남다른 바가 있어야 했다. 봉의산은 춘천의 상징이자 도심의 중요한 자연 생태계 지역이며, 시민의 친근한 휴식처이자 우리의 숨줄이다.  만시지탄( 時之歎:기회를 놓친 한탄)이 아닐 수 없으나 이제라도 한림인의 두 눈을 지켜야 한다. 두 눈을 부릅 떠야 한다. 그리고 봉의산을 바라보자. 봉의산엘 오르자. 봉의산의 신음 소리를 들어 보자.   

/ 김 번(영어영문학과) 전임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