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1896년 8월 강원도 도청이 원주에서 춘천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춘천은 정치적 요지로보다 군사적 요충지로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춘천은 사방이 400m ∼ 900m 정도의 산, 동쪽의 대룡산, 서쪽의 삼악산, 남쪽의 향로산·진병산, 북쪽의 오봉산·용화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분지의 독특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서부지역에는 인제에서 내려오는 소양강과 금강산에서 발원하는 북한강이 합류해 서울로 흘러간다. 이런 지형때문에 춘천에서 외부로 통하려면 험준한 산악을 넘거나 수로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에 더해 일단 춘천지역만 벗어나면 동으로는 서울로, 남으로는 원주·충주로, 북으로는 원산으로 진격할 수 있는 군사적 이점이 있다. 이런 춘천의 자연지리적 특성은 춘천을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로 만드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춘천에는 지방관과 군대가 배치됐다. 일찍이 삼국은 한강유역을 확보하기 위해 춘천지역을 중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나중에 춘천을 차지한 신라는 선덕왕대 이래 춘천에 군주를 두었다. 삼국통일 후 신문왕은 지방 요지에 9주를 설치할 때 춘천에 주를 두었으며, 춘천 부근에 군대를 주둔시켜 북방경비를 담당하도록 했다. 고려시대의 무신 집권기에 춘천에는 지춘주사란 관리가 배치돼 현재의 가평·화천·인제·양구·화천·홍천 등을 관할했다.

  현재 춘천 주변 산에서 삼악산성·용화산성 등 다수의 산성유적지가 발견되고 있는데, 이들 여러 유적은 대부분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걸쳐 방어용으로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임진왜란·정묘호란·병자호란 등을 겪은 조선의 집권층은 남한산성과 강화도와 같은 방어요충시설을 수리하는 가운데 춘천을 새로운 방어요충지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들은 춘천이 농토가 좁고 문화의 발달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역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견고한 산악과 험준한 요새지로 돼 있는 춘천은 방어전략상 강화도나 남한산성보다 나은 곳이니 이곳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면 외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의가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인조대 후반부터 숙종대까지 춘천부사에 임명된 관리들이 대부분 무과출신의 무장이었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집권층은 춘천의 전략적 이점을 충분히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춘천을 방어요충지로 중시하는 논의가 면면히 이어져 국방대책을 강구한 인사들은 당파를 불문하고 한결같이 춘천의 전략적 이점을 인정했다. 김상헌·김창흡·이익·정약용 등 유명한 척화론자·실학자들은 “전쟁이 일어날 경우 자체를 방어할 곳을 찾는다면 춘천 한 곳이 있을 뿐이다”고 하며 국가 전란시 춘천만이 최후까지 국운을 보존할 수 있는 중차대한 지역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개화기에 수차의 변란에 시달리며 고종은 강원도 도청자리에 자신의 피난처인 이궁(離宮)을 건립하도록 지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 오영섭(사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