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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회창씨는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다름 아닌 아들 이정연 씨의 ‘병역비리 의혹’ 때문이다. 아직
진위여부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정치 공작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 여러 곳에서의 증거, 증인이 나타나면서 그의 지지율은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또한 추락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며칠 전 국방부에 대한, 아니 우리나라 정치에 대한 어떠한 믿음조차 가질 수 없게 돼버린 사건이 또 한번
일어났다. 이 사건은 단 며칠 전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어둠 속에 묻혀있던 사건이 유가족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18년의 긴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진실이 밝혀진 것이다.
18년 전, 군 헌병대는 ‘허원근 일병의 죽음’에 대해 “허 일병이 중대장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군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자살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허 일병의 유족은 “자살하려는 사람이 세 발이나 그것도 가슴 부위를 쏜 후 마지막 한
발만을 머리를 겨냥해 총을 쐈다는 것이 석연치 않다”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에서 늘 그러했듯 군은 이 사건에서도 예외없이
‘타살의 혐의가 없으므로 자살’이라고 규정지었으며 유가족의 요청에 따른 재수사에서도 군은 이러한 결과를 확고히 해줬을 뿐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규명위)」는 지난 2000년 12월28일 허 일병의 부친 허영춘 씨로부터
사건 진정을 받고, 이를 검토한 끝에 2001년 1월13일 조사개시 결정을 하였다. 그 결과 「의문사규명위」는 지난 2002년 9월10일 최종
발표를 통해 “허 일병은 1984년 4월2일 강원도 화천군 7사단 3중대본부 내에서 벌어진 술자리에서 술에 취한 선임하사관이 오발한 총에
맞았다”며 “군은 이후 사건을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당시 대대장과 중대장 등의 논의 끝에 허 일병에게 두 발의 총탄을 더 쏜 것으로 드러났다”며
그 동안 군이 발표한 결과를 뒤집었다.
이러한 사건 경과와 조사 발표 내용을 보며 국민들은 어떠한 생각을 할 것인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아들은 누구나 기피하는
군대를 면제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평범한 대한민국의 아들들은 꼼짝없이 2년2개월의 군 생활을 보내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어떤
젊은이들은 수많은 의혹을 뒤로한 채 군에서의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1980년부터 95년까지 15년 동안 군에서 죽은 사람은 자살
3천2백63명, 폭행치사 3백87명 등 모두 8천9백51명에 이른다(『한겨레』신문 95년 9월26일자). 2000년도 국회 국방위 보고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3백여명이 죽고, 이 가운데 1백여명이 자살한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군대에서 사망했을 경우, 사고 현장과 목격자, 참고인, 각종 사건 관련 증거들이 모두 군내에 있고, 수사기록
열람조차 보장되지 않는 조건에서 유족의 힘으로 진실을 규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그 죽음이 자해로 규정될 경우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지난 98년 2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일어난 이른바 ‘김훈 중위 사망사건’이 사회문제화
됐을 때 군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대거 국방부에 민원을 제기했고, 국방부는 ‘민원제기 사망사고 국방부 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을 99년
4월에 발족해 재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하지만 특조단은 80년 이후 99년 9월30일까지 일어난 사망사고 가운데 민원이 접수된 사망사고
1백66건에 대한 조사를 2001년 9월까지 재조사했지만 단 한 건도 결과가 바뀐 것은 없어 그 명목이 ‘허울’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허 일병 사건’이후 「의문사규명위」에 대한 국민들의 격려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13일, 국회가 「의문사규명위」의
조사 시한 연장을 위한 관련법 개정을 외면함으로써 「의문사규명위」는 2년여의 활동을 사실상 마감하게 됐다. 「의문사규명위」는‘권위주의 통치에서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의문사의 진실을 밝힌다’는 취지 아래 대통령 소속으로 2000년 10월17일에 출범했으며 의문사 진상
규명을 위해 힘써왔다. 하지만 오는 16일 시한이 종료되기 때문에 지난 13일 열렸던 국회에서 연장에 대해 논의되야 했지만 종료 시한연장 문제에
대한 「한나라당」과 「민주당」간 이견에다 정부측 무성의까지 겹치면서 「의문사규명위」 시한 연장이 무산됐다. 하지만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법개정 투쟁을 계속해 나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편 혹자들은 “허 일병의 경우는 ‘선택받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의문사규명위」는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경우 재조사를 실시하는 것이고 나머지 군 의문사의 경우는 많은 의혹을 남긴 채 덮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곳곳에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사건을 포함하여 여러 상황에서 많은 의문점을 남긴 채 편안히 잠들지 못한 영혼들이 많다. 이를 위해 현재 「의문사규정위」의 활동시한
연장은 물론이거니와 더욱더 투명성 있는 조사를 위한 법개정이 시급하다. 또한 사건의 진위가 밝혀지고도 ‘공소시효’라는 걸림돌 때문에 큰 죄악이
덮어지고 있는 현실을 위해 특별법 재정 또한 필요할 것이다.
/ 김정욱 기자 kjw0304@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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