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1일, 미국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Richmond) 시의 몬로이(Monroe) 공원에서 한 무리의 여성들이 외치는
소리다. 길 가던 여성들이 멈추어 귀를 기울이더니 하나 둘씩 다가가 함께 참여하기 시작한다. 목소리가 모아지니 즉석에서 노래를 만들어 손뼉을
치며 부른다. “자기야라고 부르지 마세요. 우리는 오늘 존중을 요구합니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노숙자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리치몬드
FNB(Food Not Bombs)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이다. 공원에서 지내고 있는 여성 노숙자들을 포함해 지역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늘고
있어서 급식을 하는 시간에 맞춰서 서로에 대한 존중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준비했다고 한다. 트윈 옥스 사람들도 FNB과의 연대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는데 이날은 독일 출신의 앤야(Anja)를 포함해 5명이 참여를 했다. 리치몬드는 트윈 옥스에서 1시간 정도를 차로 달려야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시간을 내야 하지만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다.
1980년 보스턴(Boston)에서 처음 시작된 FNB 운동은 군비로 지출되는 막대한 돈을 가난한 계층 사람들의 삶의 회복을
위해 사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급식 활동을 넘어서 지역 사회의 실질적 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위한 활동을 추구하는 지역
민간단체들의 네트워크이다. FNB 활동 중에서 특이한 점은 채식주의 급식을 한다는 점이다. ‘1파운드의 고기를 만들기 위해서 16파운드의 곡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육식은 환경적으로 큰 낭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주로 감자, 버섯, 당근, 고구마, 브로콜리 등 채소들을
이용해 때마다 새로운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진 거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채식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가 않아 보인다.
그날도 트윈 옥스 사람들이 준비해 온 두부로 만든 음식을 본 노숙자 한 사람이 “이거 고기예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음식을 나눠 주던 사람이
아니라고 대답하자 “좀, 고기도 주지….”라며 실망의 빛을 내보였다. 아직 그들에게는 맥도널드의 쇠고기 햄버거가 ‘음식다운 음식’인가
보다.
트윈 옥스는 바깥 사회와 떨어진 곳이지만 사회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하는 편이다. 공동체 안에 사회운동
지원팀(Movement Support Team)을 따로 두어서 갖가지 사회 활동을 지원하고 때로는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공동체 사람이 전체의
이름으로 특정한 정치적 운동을 할 수 없지만 정치적 목적이 없는 사회 활동은 최대한 지원한다. 특히 지원 대상은 단순한 기부 단체보다는 자생적인
활동 조직을 지원하기를 원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것은 아니다. 워낙 자신들이 검소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지원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하지만 작은 규모라도 꾸준하게 지원을 하고, 직접 공동체 회원을 보내서 활동으로 지원하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매주 일요일
있는 FNB의 급식에도 트윈 옥스 사람들이 번갈아가며 참여하고 공동체에서는 여행 경비와 음식을 지원한다.
한번은 메리온(Marione) 할머니가 이끄는 사회운동 지원팀의 모임에 참석을 했었다. 그날 모임은 사회단체들에 대한 지원
상황을 점검하고, 한 팀원이 직접 가는 사회 연대 활동에 얼마만큼의 지원을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정해진 예산으로 여러 단체들을
지원하느라고 이리저리 방법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여러 가지 안건이 잘 정리되었지만 결국 메리온 할머니는 울음을 보이고 말았다.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도 많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많아…” 이상한 일이 많다. 이곳 사람들이 자꾸 한국에서 만났던 그
정 많은 사람들로 보이고…. 3주 방문자 프로그램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무렵 팩서스(Paxus)는 우리에게 회원 가입 면접을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이곳에 사는 일을 조금이라도 생각 중인 사람에게는 트윈 옥스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면접 후에 회원 가입 신청이 의무는 아니라는 말에 나도 면접을 신청했다.
면접은 헤더(Heather)를 포함한 공동체 멤버 3명과 만나 먼저 자신에 대해 소개를 하면 그들이 미리 정해진 질문을 하고
답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해서 이야기를 천천히 해나갔다. 아마도 ‘외로움, 타락, 공동체적 삶에 대한 희망’ 같은
말을 강조해서 말했던 것 같다. 이어 질문이 시작됐다. 가족관계, 건강, 시민권 등 기본적인 것들 다음에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 되었다.
“이곳에서는 하루 2달러만 가지고 생활을 하는 것을 알고 있나요? 그리고 이곳에서는 서로의 생각과 취향을 상대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만약 공동체 내에서 어떤 사람과 갈등이 생겨서 결국 큰 화가 나면 어떻게 할 겁니까?”“만약 당신의 아내가 당신보다 다른 공동체
회원들과 유대 관계가 더 깊은 것처럼 느껴지면 어떻게 할 건가요?” 질문은 점점 더 미묘한 문제들을 담고 있었다. “예, 익숙하지는 않지만
단순하게 그리고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살고 싶어요” “우선 그 자리를 피해서 큰 다툼을 막겠습니다” “오해는 언제든 있다고
생각해요. 대화를 충분히 해볼 거예요” ……… “아니에요, 솔직히 공동체 생활을 무난히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잘 모르겠어요. 일단 살아봐야 알
것 같아요”
처음에는 무슨 모범 답안을 말하듯이 대답했지만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들도 사람들이 답하는
그 모양 그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평화적인 모둠살이를 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서로 확인하고 싶었으리라. 그리고
공동체 생활은 이상이 아니라 치열한 현실임을 미리 알려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내게 와 닿았던 것은 들의 일상적인 삶의 태도에 깔려
있는 평화의 원칙이었다. 어떠한 경우라도 아무런 조건 없이 평화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은 이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정신이다. 면접이 끝나고 세
사람의 의견과 느낌을 내게 말해 주는 시간이 되었다. 그들은 나의 ‘방황’ 이력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대체적인
의견은 전혀 다른 문화에서 사는 것과 시민권의 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한 번 트윈 옥스 회원으로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거였다. 그러나
문화의 문제도 아니고, 시민권의 문제도 아닌‘용기’의 문제 때문에 회원 가입 신청을 포기하고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계속하게 되었다. 불확실한
무언가를 감행하는 일을 언제나 할 수 있을 런지….
/ 원충연 http://wonshine.net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