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 가을의 시작이 겹치는 때다. 가을이 시원한 바람을 조금씩 내뱉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낮에는 여름의 위세가 등등하다. 여름과 가을이 1년 만에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누는지, 아니면 힘겨루기를 하는지.

  요새는 “시원한 바람 부니 살겠다. 다시는 여름이 안왔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인사말처럼 많이 듣는다. 그런데 더운 여름이 있어 즐거웠던 기억마저 함께 버려서야 되겠는가. 여름 더위가 있어 휴가 여행도 다녀왔고, 나무 그늘의 시원함도 맛볼 수 있었다.

  이번에 찾은 곳은 ‘구봉산'이다. 흔히 ‘구봉산에 놀러간다'는 말은 ‘차를 타고 구봉산 전망대에 가서 춘천 경치를 즐긴다'로 이해되지만, ‘시큼한 일상, 달콤한 여행’팀이 간 곳은 구봉‘산'이다.

  새정문에서 세경3차, 주유소 사거리, 동광오거리까지 직진으로 그대로 지나 만천로까지 이르는 데에는 담배 세 대를 피우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사진기자는 골초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만천로에 들어서 조금 걸어가면 ‘만천 막국수'가 있다. 이 집은 막국수보다 만두국과 파전이 더 유명하다. 파전이 상당히 두꺼워서 두어명 술안주로도 충분하다.

  좀 더 걸어 가니 골프연습장이 새로 들어서 있었다. 흉했다. 들어가는 곳에 ‘여러분, 한림대학교에 가면 공짜로 연습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골프 연습은 그 곳에 가서 하시고 이 그물을 걷어 소양강 물고기를 잡으러 갑시다'라는 말을 써붙이고 싶었다. 그냥 왔는데, 내내 아쉬었다. 조금 더 걸으면 오른쪽으로 조그만 고추밭이 있고 그 앞으로는 ‘병천 순대국밥'집이 보인다(음식점 이름으로 지리를 익히는 이 버릇이란). 여기에 오니 구봉산이 잘 보인다. 꽤 걸어와 나는 좀 힘들었는데 사진기자는 힘든 기색이 없다. 사진기자에게 저 무거운 카메라는 어떤 것일까. 사진기자는 카메라가 좀 더 무겁고 좀 더 싸구려라도 쉬이 다루지 않을 것이다. 나도 저렇게 애정을 주었던 물건이 있었을까. 이미 싫증을 내서 다 버린 것은 아닐까.   산이 보이자 사진기자가 오르막 아래의 사거리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니 찍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서 전문가의 본색이 드러났다. 나는 고추밭의 잠자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게으른 한량의 본색이 드러난 것이겠지.

  걸어서 가는 게 부담스럽다면 구향군회관 건너편에서 91번 버스를 타면 오르막 아래 사거리까지는 갈 수 있다. 그런데 거기부터는 내려서 걸어야한다. 구봉산에 오르려면 길을 건너 왼쪽으로 걸어 올라가야한다. 사거리의 앞쪽에는 ‘신토불이 청국장'집이 있다. 도대체 무슨 기술인지, 그 청국장 찌개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냄새 때문에 청국장 찌개를 먹지 못했던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오르막을 30분 가량 오르면 잘 알려진 구봉산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 건너편에서 10미터 정도 뒷쪽에 ‘나무주사'라는 팻말이 있는데 여기가 구봉산의 입구다. 그런데 전망대와 구봉산 입구 사이에 나있는 길에는 횡단보도가 없다. 그냥 건너기에는 위험하다. 여기저기에 ‘절대감속'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길이다. 아래 사거리에서부터 길을 건너서 올라와야했다. 나중에 산에서 내려와 춘천시청에 전화를 했다. “왜 구봉산 입구에 횡단보도가 없습니까. 그냥 건너기에는 너무 위험한데요" 전화를 받는 직원은 다른 부서로 전화를 이어주었다. 같은 일이 또 한 번 반복됐고, 마지막으로 연결해 주려 했던 직원은 출장을 갔다고 했다. 명색이 관광도시 아닌가. 버스 노선 문제도 그렇다. 차가 없는 노인과 어린이는 그 오르막길을 어떻게 오를까. 출장 다녀오시면 귀찮은 일 가득 있겠다.

  이 산은 소나무가 빽빽하다. 정상 바로 아래까지 빽빽히 있다. 그래서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하늘도 잘 보이지 않다가 정상에 오르면 갑자기 환해지면서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이 때 느끼는 기분이 환상적이다. 달콤하다! 춘천 시내와 춘천을 둘러싼 산이 전부 보이는 구봉산 정상의 경치는 말로 함부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공자도 강물을 바라보며 “흐르는 것은 저러하구나"라고 말했다고 했다.

  산을 내려와 반대쪽 내리막으로 내려갔다. 걸어내려가면 ‘감정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가면 속초로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가면 춘천이다. 왼쪽으로 1백미터쯤 가다가 파출소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10분 정도 걸으면 ‘옥미관'이라는 자장면집이 있다. 수타자장면의 맛이 일품이다. 자장면집에서부터 오던 방향 그대로 걸어 가면 양쪽으로 논이 주단처럼 깔려있는데, 지금보다는 추수할 즈음의 광경이 더 멋질 것 같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돌아 조금 더 걸어가면 또 멋진 풍경이 등장한다. 옥수수밭이 길고 넓게 나있다. 이 길은 차로도 몇 번 다녀봤지만, 어째서인지 차로 다닐 때에는 전혀 볼 수 없었다. 옥수수가 빽빽하게 서있으니 같이 걷는 사람이 연인이라면 ‘옥수수밭의 낭만'도 즐겨볼 만하다. 그런데 지금은 이 길에 사람다니는 길이 제대로 나있지 않아 권하고 싶지 않다. 아쉽지만 지금은 자장면집에서 왔던 길로 다시 가 파출소에서 우회전하여 한림성심대학을 거쳐 학교로 가는 것이 좋겠다. 나그네는 왔던 길을 다시 밟지 않는다 했는데…….

  글을 읽으며 잠시 ‘옥수수밭의 낭만'을 꿈꾸었던 연인들을 위해서도 사람다니는 길을 빨리 만드는 것이 좋겠다. 춘천시청에 전화할 일이 또 생겼다.

/ 남일성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