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송아트홀로 가는 길목에 서있는 향나무

19세기 최고의 명저 ‘월든’에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숲에 사는 가장 큰 즐거움으로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 것으로 꼽았다.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랫소리, 호수의 얼음이 벌집 모양으로 갈라지는 모습을 들여다보며, 소로우는 봄의 차분한 걸음걸이를 느꼈다. 도시민들에게 봄은 언제 찾아왔는지 느낄 겨를 없이 일쑤 스쳐 보내는 계절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대학 캠퍼스에서만큼은 봄이 오는 소리를 가만히 들을 수 있는 기회가 틀림없이 있다.

춘천은 다른 어느 곳에 비해 봄이 늦게 찾아오는 곳이지만, 우리 교정만큼은 벌써 봄 내음 가득하다. 신입생들의 밝은 웃음소리 섞인 수런거림은 물론이고, 뿌리로부터 물을 힘차게 끌어올리고 있는 나무들의 기운찬 생동감에서도 봄은 느낄 수 있다.

그 추웠던 지난 겨울, 교정의 나무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무릇 모든 생명들이 겨울 잠에 빠져있던 겨울에도 푸른 잎 하나 떨어뜨리지 않고 꾸준히 생명 활동을 이어간 나무들이 있다. 학생회관에서 일송아트홀로 오르는 언덕 가장자리에 다소곳이 서있는 한 그루의 향나무가 그 중 하나다.

사철 푸르름을 유지하는 상록수인 향나무는 예부터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물로 여겨졌던 신성한 나무다. 나무의 줄기에서 독특한 향이 난다 해서 향나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나무는 제사를 지낼 때에 향을 피우는 재료로 필수적이었다. 나무의 향이 하늘에까지 닿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까닭이다.

이같은 믿음이 가장 극단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 바로 매향(埋香)의식이다. 향나무를 바닷가에 수백 년 동안 묻어두면, 천지가 개벽하여 민중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태평천국, 미륵세상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의식이다. 그때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고이 묻혔던 향나무가 바다 위로 솟아오르고, 천지가 개벽한다는 것이다. 그 흔적은 매향비(埋香碑)라는 유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향나무는 그렇게 이 땅에 살아가는 민중의 소망과 이를 실현시켜주는 대표적인 나무로 여겨졌다.

봄이 오는 부산한 수런거림 속에 스쳐지나게 되는 일송아트홀 언덕가의 키 작은 향나무. 이 아름다운 봄, 한 그루의 향나무를 통해 우리가 하늘을 향해 무엇을 기원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