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서넛이 모인 술자리에서 최상의 안주는 단연 ‘한보비리 청문회’이다. 모든 언론매체는 9년 만에 다시 열린 국회청문회를 연일 톱기사와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각종 사견들과 언론매체가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들 앞에서 냉정하게 생각해볼 것이 있다. 바로 가장 비양심적이고 야비한 정치인들의 ‘정치 논리’라는 것의 속성에 대해서 말이다.

  88년 5공 청문회를 상기해보자. 피해자와 가해자의 증언은 군부의 정권찬탈 과정과 시민의 저항을 생생히 재현시켜 줬다. 또한 위정자들이 정경유착과 권력남용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과정이 낱낱히 폭로됐다. 국민들은 이런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는구나’라고 막연하게나마 생각 했으리라. 그러나 결과적으로 당시 사건을 조사했던 광주특위와 5공 비리특위는 90년 3당 통합이라는 정치인들의 야합으로 제대로 된 국회 보고서 하나 만들지 못한 채 해체됐다. 또한 규명됐어야 할 광주, 5공 비리의 진상은 보수언론의 언론플레이와 정·재계의 ‘정치 논리’에 가려 지금까지 미궁의 과제로 남아있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5공 청문회를 보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 봐야 한다. 그리고 사건을 끝까지 규명하지 못해 노태우정권이라는 군사독재의 잔재에 4년을 기만당했던 과거를 상기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엄습하고 있는 정치, 경제, 안보 등의 ‘총체적 위기’또한 당시 우리의 이같은 과오에서 빚어졌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보비리 청문회’를 보며 국민들은 많은 생각을 한다. 증인들의 당혹스런 모습에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고 불성실한 증언 태도와 의원들의 미흡한 질문을 보며 ‘저들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냉소적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적 모습에 관성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또 다시 역사의 과오를 답습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통해 우리의 행동좌표를 설정해야 한다. 우선 한보사태에 연루된 정계와 재계의 인물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수사해 책임을 추궁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한보사태의 ‘원흉’이라 의심받지만 ‘성역’으로 분리돼 검찰의 수사대상에서 제외된 YS의 ‘대선자금 공개’가 우선돼야 한다. 아울러 ‘헌정 중단’,‘3김 공멸’ 등을 운운하며 청문회의 진정한 취지를 왜곡시키는 말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비판해야 한다. 이후 정치모리배들의 야합으로 이번 사건이 흐지부지 넘어간다면 우리는 민주 선열들의 이름으로 분연히 떨쳐 일어서야 할 것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또 한 번의 시험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역사에서 얻은 교훈을 냉철한 판단과 실천으로 매듭지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