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여름 개봉한 영화 '괴물' 스틸 사진

  영화 ‘괴물’에서 필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이다. 아마도 부도난 중소기업 사장쯤 될 법한 인물이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리기 직전, 강물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놀라 사람들에게 보았냐고 묻지만 사람들은 뭐가 있냐며 핀잔을 준다. 곧 남자는 위의 대사를 남기고 강물 속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남자가 뛰어내린 비 내리는 강물 위로 드러나는 휘갈겨 쓴 괴물이라는 두 글자. 짐작했듯 이제부터 영화 ‘괴물’과 함께 시작될 이야기들은 스포일러가 난무할 것이다. 그래서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은 이쯤에서 잠시 심호흡을 하고 이글을 끝까지 읽을 것인가 고민하길 권하고자 한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면 이제부터 영화 ‘괴물’과 함께 이영화가 보여주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괴물’은 여러모로 특이한 영화이다. 한국영화에서 이른바 괴수영화라 함은 ‘용가리’로 대표되는 조잡한 그래픽과 그에 못지않은 배우와 내러티브를 갖은 어린이용영화라 할 수 있다. 혹, 이런 필자의 견해를 반박하고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리보아도 심형래 감독의 영화들은 그 이상의 평가를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이에 반해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많은 이들의 평가절하에도 불구하고 그래픽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갖추었다. 이와 더불어 감독의 전작에 출현했던 낯익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훌륭한 내러티브 구조를 통해 올여름 관객들에게 상상만큼의 재미를 선사해 주고 있다. 더 이상의 칭찬은 홍보용 문구 같아 접어두더라도 ‘괴물’이 뛰어난 완성도를 확보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단지 여름을 겨냥한 블록버스터일 뿐일까? 대답은 예상했듯이 단연코 'NO'이다. 오히려 ‘괴물’은 괴물이 등장할 뿐 단순한 괴수영화를 넘어서는 지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 보이는 특징들을 짚어나가면 그 지점들이 조금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국영화에서는 새로운 시도라 할지라도 해외에서 수없이 제작되었던 일련의 괴수영화들은 괴수의 탄생 배경으로서 환경오염을 들고 있다. 일본의 고질라는 히로시마 핵투하의 결과이고 미국 거대 거미의 이야기인 스파이더 역시 산업폐기물 불법투기에 따른 돌연변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괴물’ 역시 이러한 모티브를 그대로 차용하지만 그 탄생에는 ‘리얼리티’가 더해진다. 2000년 미8군 영안실 부책임자였던 앨버트 맥팔랜드가 한강에 포름알데히드 방류를 방류하는 사건이 터지자 이 영화를 구상하고 있던 봉준호 감독은 ‘마치 자신을 위한 사건이 터 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라고 한다. 히로시마 원자폭탄으로서 일본의 고질라가 그 탄생에 진실성을 얻었다면 이 사건으로 인해 봉준호 감독은 ‘괴물’의 탄생설화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질라의 탄생인 히로시마 원폭과 괴물의 탄생인 미군의 독극물 한강방류는 분명한 차이점을 지닌다. 그것은 바로 원폭이 이미 ‘역사’의 일부분으로 과거완료형이라면 미군의 독극물 방류는 현실로서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이로서 ‘괴물’의 탄생은 절실한 리얼리티를 부여받는다. 이처럼 타인으로부터 명령받아 ‘우리들’이 실행하고 묵인한 괴물은 그 존재가 강물아래 있을 때 강물위의 우리들은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 실체가 강물위로 드러남으로서 근심한 혼란을 겪으며 히스테리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아주 중요한 점을 나타낸다. 영화에서 괴물의 탄생이 21세기에 접어드는 2000년에 이루어지고 그러한 21세기에 영화 안에서 우리에게 괴물을 선사한 미국은 영화에서처럼 영화 밖에서도 한국에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로 함께하고 있다.  
 

▲ 영화 '괴물'은 괴물에게 잡혀간 딸 현서를 구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에서 괴물로 인해 현서를 잃은 강두의 가족은 현서에게 걸려온 전화를 통해 현서의 생존을 알게 되고 이를 알리지만 세상은 그들의 외침을 단지 현서를 잃은 스트레스에서 온 허상이라고 단정짓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한술 더 떠서 현서를 찾기 위해 병원을 탈출한 그들은 위험한 바이러스 보균자로서 마치 범죄자 같이 치부 당한다. 결국 바이러스는 없는 것으로 밝혀지지만 진실은 알려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 강두의 아버지(변희봉분)는 괴물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중에 가족은 헤어졌다가 결말부분 괴물이 한강변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다시 한 번 모이게 된다. 이렇게 마지막에 다시 모인 가족은 화염병을 던지고(삼촌-박해일분), 활을 쏘고(고모-배두나분), 결국에는 쇠꼬지를 괴물의 입에 쑤셔 넣어(아버지-송강호분) 괴물을 쓰러뜨린다. 이처럼 우리들의 묵인 하에 탄생한 괴물을 쓰러뜨리는 것은 그것이 탄생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미국도 아니고 한국의 공권력도 아닌 한국사회의 소시민들이다. 그들이 힘을 합쳐 괴물을 쓰러뜨림으로서 일견 소시민인 박강두의 가족이 그들에게 닥친 고난을, 진실을 외면하는 세상이 아닌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상 그들은 피해자인 동시에 그들에게 가해를 입힌 괴물의 탄생을 묵인한 한국사회 그 자체이다. 우리들이 함께 있으면서도 극히 무관심한 미국의 문제에 대해 외면한 것처럼 극중 박강두의 아버지는 둘재 남일이 바이러스의 존재에 의문을 갖자 ‘위에서 있다고 하면 그런가보다’ 하라며 간단하게 매듭짓는다. 강두는 아버지를 괴물에게 잃고도 텔레비전에서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관심없이 텔레비전을 꺼버린다. 그렇게 그들은 피해자임에도 가해자이며 또 다른 괴물이 탄생할 수 있는 여지를 암묵적으로 묵인한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등장하는 ‘잘못된 정보를 통해 행동한’ 미국에 대해 영화에서 직접적 비판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괴물이 700만을 돌파한 지금(2006.8.7현재), 괴물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 편에서는 헐리우드 수준에 못미치는 그래픽을 문제삼는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강두의 가족 안에 부재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거론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할 것이고 필자가 거론하고 싶은 것은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괴물이 탄생할 수 있는 그 소름끼치도록 근접한 가능성과 괴물을 물리치는 인물들 자체가 가해자의 일부로서 드러나는 사실뿐이다.     
    
  영화 괴물을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여자친구와 한 번, 영화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춘천 프리머스에서 혼자 다시 보았다. 극장은 괴물을 보러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사람들은 연인의 손을 잡고 혹은 가족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극장을 찾았다. 그리고 노부부가 나란히 돋보기를 쓰고 나선 모습은 필자가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은 역사상 처음 본 관경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헐리우드영화 같아’, ‘무서워’, ‘재밌네’라는 반응들을 쏟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필자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노부부는 끝내 ‘이거 만화영화구만’이라는 말을 끝으로 극장을 나섰다. 정말 그것뿐일까? 라는 생각이 들 때 쯤, 그 대사가 다시 한 번 머리 속을 스쳤다.

  ‘끝까지 둔한 새끼들. 잘들 살아.’

  감독이 초반부에 제시하는 굳이 삽입하지 않아도 되었을 이 대사, 그것이 영화를 보는 동안 끔찍한 상황에서 문득문득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한국의 한강아래 존재하는 괴물, 그 괴물이 수면위로 뛰쳐나오자 같이 떠오른 수많은 부조리들이 더한 괴물이라는 사실을 말하고자했다. 아마도 끝까지 둔한 우리들은 죽을 때까지 모르겠지만, 감독은 조금은 그것을 알았으면 하는 바램이었을 것이다. 부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가 있다면 극장에서 보시길 바란다.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지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래픽이 아닌 이야기를 보길 권한다.       

/ 이윤섭(방송통신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