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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에서의 ‘통일’은 늘 거론되는 얘기다. 분단 51년 동안 우리는 정말 수많은 ‘통일’얘기를 하고 들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렇게 많은 얘기를 했는데 어째서 조금의 진척도 없이 늘 같은 얘기만 반복되는 것인지……. 그러던 중 선배로부터 통일을 얘기하는
행사인 ‘범민족 대회’에 대해 듣게 됐다. 말뿐인 ‘통일’이 아닌 실천의 통일행사라고 들었다. 그래서 직접 느끼고 배우고 싶어 가게
됐다.
하지만 정부의 태도는 너무나도 차가웠다. 자신들 외에는 통일을 얘기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우리국민의 하나 됨이니 당연히 우리모두가 다함께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만 우리의 국민이고 정부 혼자서만‘통일’하면 되는
것인가? 설사 정부 혼자‘통일’을 얘기해서, 통일이 된다해도 그게 우리 민족의, 우리 국민의 진정환 통일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건 우리의
‘통일’이 아니다.
나는 행사가 열리고 있는 연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연행됐다. 전경들이 연대를 지나는 모든 버스를 검문하여 대학생이면
무조건 연행해 간 것이다. 나는 그 곳에서 참 많은 사람을 보았다. 파이프를 소지했다고 맞고 있는 사람, 아무 죄 없이 끌려와 항의를 하는
사람, 우리는 위의 명령대로 할 뿐이라며 딴청을 부리는 전경들, 어떡해서든지 구속을 시켜보려고 계속 질문을 퍼붇는 형사, 너희들은 다 정신머리가
제대로 돼있지 않다며 욕짓거리를 일삼는 경찰 아저씨, 간간히 밖의 소식을 접하며 애타게 친구들을 걱정하는 사람, 아무 이유없이 끌려온게 너무
화나서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사람…….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느낌을 갖게 됐다. 처음 느낀 것은 너무나도 당연스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법을 수호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법을 지키는지 나는 똑똑히 보았다. 무조건 연행해 와서는 조서를 쓴다고 했다. 반복되는 ‘거짓말이지?’라는 말
그리고 유도심문……. 한 번씩 이동할 때마다 고개 숙이라며 윽박을 지른다. 심지어 어떤 사람에게는 나중에 설명해 준다며 읽히지도 않고 지장을
적게 한 그 종이에는 그 사람을 범법자로 얘기하는 내용이 있었고 그 사람은 결국 판사를 만나야 했다. 물론, 나중의 설명은 없었다. 그리고
훈방되기 전 각서를 쓰게 했다. 무의미하게 프린트 된 흰 종이에 지장을 찍게 했다. 윽박을 지르며, 집에 가고 싶지 않냐는 말과 함께…….
연행에서 훈방까지 그들은 이런 태도로 일관했다.
나는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법을 모른다 해도 그들의 행동이 옳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그들은 수호자가 아니었다. 변칙자일 뿐이었다. 함께 연행됐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끔찍해！이게 내가 사는, 사회의
현실이라니… ….”
그러고 두번째로 느낀 것이 있다. 비록 내가 행사장엔 못 들어갔지만, 경찰서 안에서 또 다른 ‘통일’을 볼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눈에서, 마음에서…… . 지금 당장 자신의 처지부터가 좋지 못한 상황인데도 그들의 입에선 한결같이 친구들의 걱정이
있었고, 나라에 대한 사람이 있었고‘통일’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과 언론들은 그들의 주장과 모습을 너무나 왜곡하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은 잘못됐으며 용공사상이고, 그들은 ‘주사파 빨갱’이들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면 그것이 아님을 쉽게 알수 있을 텐데.
그들도 엄연히 생각이 있는 대학생이다. 그런 사람들이 아무 소신없이 남의 손에 좌지우지되며 자신에게 피해가 올지도 모르는 일들을 할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내가 그들의 눈에서 보고 느낀 것은 서로에 대한, 나라에 대한, ‘통일의 열망’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볼
수 있었다.
남과북 우리민족은 반만년을 함께 살았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겨우 50년을 떨어져 산 것 뿐이다. 긴 세월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반만년 긴 세월 동안 우리나라는 외세로 나눠진 일도 많았으나 언제든지 다시 하나가 되었다. 문익환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통일은 이미
됐어.”라는 말이 떠오른다. “저 역시 그곳에서 ‘통일’을 보고 왔습니다”
/ 철학과 96 김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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