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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 충격의 에로티시즘과 만나다
신혜경 교수  |  shinh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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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5.18  21: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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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 마그리뜨 <강간>(1934)
 
언젠가 서울의 한 백화점 재공사 때, 외부 보호벽 위에 복제되었던 대형 그림을 기억하는지? 검정 외투에 중절모를 쓴 신사들이 하늘에서 소낙비처럼 떨어지던 그림, 그 이미지를 위해 1억원의 로얄티를 지불했다던 그림, 그러니까 <매트릭스>에서 스미쓰 요원이 수도 없이 복제되는 장면에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던 바로 그 작품, 르네 마그리뜨(1898-1967)의 <겨울비>였다. 사진을 찍듯 너무나 사실적이고 세밀한 표현방식, 그러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사물들의 크기와 배치로 인해 우리를 섬뜩하고 아찔하게 만들었던 그의 회화는 이른바 초현실주의 예술운동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초현실주의라는 말은 프랑스의 시인 아뽈리네르가 1917년 당시 파리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총동원되었던 무용극 <퍼레이드>(장 콕토의 대본, 에릭 사티의 음악, 피카소의 의상과 무대디자인, 마신느의 안무)를 평하면서 처음으로 만들어낸 말이다. 이후 1924년 앙드레 브르똥의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통해 이 예술운동은 공식적인 출범을 선언한다. 여기에서 초현실주의는 “사유나 이성에 의해 지시된 어떠한 통제도 없이, 어떠한 미학적 관심이나 도덕적 관심도 배제된” 순수한 정신의 자동현상이라 규정된다. 이들은 예술에 있어서 인간 무의식의 심연이 드러내는 우연성과 비합리성을 통해 인간 정신을 해방하고 일상의 경이로움이 전해주는 발작적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초현실주의의 정신은 합리성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근거한 낙관적 희망이 자본주의의 모순과 세계대전의 참상 속에서 이미 상실되어버린 시대의 지평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란 이성적 존재도 아니요, 그러한 합리성이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것도 아니라면, 어쩌면 이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인간정신의 감추어진 다른 영역, 무의식과 꿈, 상상력과 광기, 도취와 환상 속에서 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에서 무의식의 해방은 자본주의 사회의 제도화된 질서에 의해 억압된 인간의식의 해방을 지향하며, 초현실주의가 주된 테마로 삼았던 에로티시즘과 황홀한 사랑 또한 기존 사회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동경을 내포하는 것이다.

이러한 초현실주의의 충격적 에로티시즘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 마그리뜨의 <강간>이다. 이 그림 속에서 여성의 젖가슴은 얼굴의 눈이 되고 음모는 수염이 된다. 머리카락은 마치 음부의 털을 연상시킨다. 또한 얼굴과 목의 형태는 남근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서 마그리뜨는 여성의 에로틱한 부위와 얼굴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사물을 융합시킨다. 이것을 데페이즈망(전위)이라고 하는데, 사물이 애초에 놓여있던 일상적 자리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이질적 공간에 놓임으로써 심리적인 충격과 경이로운 체험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로트레아몽의 시를 빌자면, “해부대 위의 재봉틀과 우산의 만남”인 것이다.

이렇듯 마그리뜨의 그림은 합리적인 사물의 질서와 체계에 칼날을 들이댄다. 나아가 그는 극도로 정밀한 사실주의적 표현기법을 이용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알 수 없는 불안과 아득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결국 현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스쳐지나왔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모호하며 다층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이제까지 믿어왔던 외부 세계의 권위와 확실성은 붕괴되어버린다. 어쩌면 <강간>이란 우리가 당연시 믿어왔던 합리적 사고에 대한, 확실성의 권위에 대한, 우리의 의식에 대한 강간은 아닌가? 오늘밤 폴 사이먼의 "Rene and Georgette Magritte with their Dog after the War"를 들으면서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 신혜경(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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