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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벛꽃나무
김원국 작가  |  diedl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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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8.23  10:3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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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나무 
                            유홍준

 추리닝 입고 낡은 운동화 구겨 신고 마트에 갔다 온다 짧은 봄날이 이렇게 무단횡단으로 지나간다 까짓 무단이라는 거 뭐, 별것 아니지 싶다 봄이 지나가는 아파트단지 만개한 벚꽃나무를 보면 나는 발로 걷어차고 싶어진다 화르르화르르 꽃잎들이 날린다 아름답다 무심한 발바닥도 더러는 죄 지을 때가 있다 머리끝 생각이 어떤 경로를 따라 발바닥까지 전달되는지…… 그런 거 관심 없다 굳이 알 필요 없다 그동안 내가 배운 것은 깡그리 다 엉터리, 그저 만개한 벚꽃나무를 보면 나는 걷어차고 싶어진다 쎄일로 파는 다섯 개들이 라면 한 봉지를 사서 들고 허적허적 돌아가는 길, 내 한쪽 손 잡은 딸아이가 재밌어서 즐거워서 자꾸만 한번 더 걷어차보라고 한다 한번 더


어느 인터뷰에서 키아누리브스는 가슴이 작은 여성이 좋다고 했다. 기자가 의아해하며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랑하는 그녀의 심장 소리가 더 잘 들리니까요.”

키아누리브스의 작은 가슴 예찬은 미국처럼 큰 가슴 숭배의 문화에서 살아온 남자치고는 독특하고 감동적이다. 그러나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그의 말마따나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소리가 잘 들려서 작은 가슴이 좋다면, 심장 소리가 큰 여자를 찾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내 생각에 그는 그저 작은 가슴의 여자를 좋아하고, 그 이유를 그럴듯하며 자기 방식으로 가져다 붙인 것 같다. 그러니까 마칡 시처럼 말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잡지로는 <좋은생각>이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좋은 생각’만 있기 때문이다. ‘좋은 생각’만 있기 때문에 ‘좋지 않은 생각’들은 배척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쁜 생각이 잔뜩 담긴 시를 찾아봤는데, 별로 없어서 유홍준 시인의 <벚꽃나무>를 골랐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갈등은,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무단횡단을 할 때였다. 분명 건널목이 아닌 곳에서 건너면 안 된다고 배웠고, 그렇게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누구나 무단횡단을 한다. 내 생각에 벚꽃은 바로 그때 피는 것 같다. 맨 처음 무단 횡단을 결정하는 때.

내가 어릴 적 우리 동네엔 그럴듯한 놀이터가 없어서 옆 동네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로 몰래 가곤 했다. 몰래 가야 했던 이유는 옆 동네 애들이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는 걸 보면 아파트 경비아저씨가 항상 쫓아내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주민들의 돈으로 만든 놀이터이므로, 돈을 내지 않은 옆 동네 애들이 와서 노는 걸 막는 건 나쁜 생각이 아니다. 그러나 한편, 자기 동네 놀이터엔 그네 밖에 없어서 길을 몇 개나 건너 옆 동네 놀이터까지 놀러 가는 어린 아이의 생각 또한, 나빠도 나쁜 게 아니다.

어떤 애들은 쫓겨나면서 경비아저씨에게 욕을 했고, 어떤 애들은 울면서 미안하다고 했고, 어떤 애들은 아파트에 세워진 커다란 나무를 발로 차고 그때마다 벚꽃 잎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때 나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쫓겨나는 그 풍경이 마음에 남아 마디가 졌고, 일종의 나이테가 되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나무를 걷어차거나, 무단횡단 하거나, 딸의 손을 잡거나, 여자의 가슴에 대해 평가할 때가 있다. 이런 것들은 좋으니 해야 한다거나, 나쁘니 하지 말아야 되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벚꽃나무가 “이건 좋은 거니까”하면서 꽃을 피우거나 “이건 나쁜 거니까” 하면서 꽃잎들을 떨어뜨리는 건 아니다.

때로는 자기 애인을 가장 먼저 구하는 못된 소방관이 되어도 좋지 않을까. 캠퍼스엔 가을이 슬슬 기어 다닐 텐데 벚꽃나무 얘기를 하는 게 계절감은 없지만, 좀 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데로 생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캠퍼스에 단풍 불 붙으면,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달려가야 할 텐데, 연애들은 하고 있으신지 모르겠다. 남자친구가 군대간 가슴이 그리 크지 않은 여자분들은 나에게 연락 한 번 해주길 바란다.

다음 원고에는 학생의 시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즉석 <용돈 백일장>을 연다. 시를 아무렇게나 써서 diedlion@hanmail.net으로 보내주시길. 장원에겐 용돈 3만원을 드린다. 

 / 김원국(시인ㆍ국문학과 05년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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