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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 나치의 예술정치의 예술화
신혜경 교수  |  shinh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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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9.13  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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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 잘리거(1894-1987)
 
이번에는 가벼운 수수께끼로 출발해보자. “이 그림의 제목은 무엇일까?” 어쩌면 다들 처음 보는 그림일 텐데, 제목을 대라니 너무 무리한 질문은 아닐까. 물론 그림은 낯설지 몰라도, 이 제목을 알고 있는 학생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벌거벗은 세 여성과 한 남자, 그리고 한 여성은 남자 앞에서 자신의 누드를 펼쳐보이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소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폼을 잡고 앉아있는 남성을 보라. 가벼운 셔츠에 반바지, 여성들의 누드와는 사뭇 안 어울리는 이 남성의 손을 가만 보니, 오호라 사과가 들려 있다. 이쯤 되면 정답이 나올 법도 하다. 이 작품의 제목은 “파리스의 심판”(1939)이다.

'파리스의 심판'이라면, 저 유명한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되는 사건이 아니었던가. 잘 알려진 것처럼, 트로이 전쟁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쪽지가 달린 황금사과가 화근이었다. 이 사과를 놓고 아테네와 아프로디테, 그리고 헤라, 이 세 여신의 각축전이 벌어졌는데, 이 어려운 판단을 맡게 되었던 것이 바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였다. 세 여신은 각자 파리스에게 유혹의 조건을 내걸었다. 아테네는 자신에게 사과를 주면 지혜와 용기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헤라는 세상을 다스리는 힘을,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맺어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매혹적인 세 조건 속에서 파리스가 선택한 것은 아프로디테였다. 아뿔싸. 불행히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였던 것이다. 결국 나중에 트로이의 왕자 자격으로 스파르타를 방문한 파리스는 메넬라오스 왕의 환대 속에서 그의 아내 헬레나와 눈이 맞아 스파르타를 도망쳐 버렸다. 이렇게 해서 역사의 수레바퀴는 결국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의 기나긴 전쟁으로 치달았던 것이다.

<파리스의 심판>이라는 소재는 지금까지 오랜 시대를 걸쳐 수많은 예술가가 즐겨 그렸던 주제였다. 루벤스, 보티첼리, 크라나흐 등이 <파리스의 심판>을 그렸지만, 각각의 시대에 따라 표현방식은 제각각이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언제 그려진 것일까. 이것은 히틀러가 지배했던 독일 나치 시대의 것이다. 이 시대는 나치당의 정치이념과 지도자 숭배를 찬양하기 위하여 예술의 자율성이 철저히 억압되던 시대였다. 나치는 이른바 “퇴폐 예술”이라는 딱지 아래 히틀러가 주장하는 새로운 제국의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 예술들을 파괴해 버렸다.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들, 그러니까 칸딘스키, 그로츠, 키르히너, 클레, 놀데와 같은 위대한 작가들이 나약하고 병적이며, 퇴폐적인 인간상을 부각시킨다는 이유에서 탄압되고 불태워졌다. 1939년에는 세잔, 고흐, 마티스, 피카소, 샤갈, 뭉크의 작품들이 퇴폐 미술이라는 낙인 아래 외국으로 방출되고 나머지 천 사백여점에 달하는 작품들이 모조리 소각됐다.

그렇다면 이러한 무자비한 “숙청작업” 속에서 나치가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예술은 어떤 것이었을까. 잘리거의 <파리스의 심판>이 대답을 제공해준다. 나치가 주장하는 “새로운 미술”은 독일 민족의 우월감과 영광을 표현하고 장려하는 예술, 다시 말해 영웅적인 아리안 종족의 혈통적인 단일성과 건강한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것이어야 했다. 따라서 나치 미술은 남성에게는 진취적인 힘과 강력한 투쟁정신을, 여성에게는 종족을 번성시킬 수 있는 모성본능과 남성에 대한 순종정신을 고취시키도록 표현되어야 했다. <파리스의 심판>에서도 여성은 아리안 종의 순수성을 표현하는 건강한 아름다움의 총체로서 자신을 평가하는 남성의 눈에 들길 고대하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존재한다. 히틀러의 말을 빌자면, “여성의 세계는 남성이며 여성은 남성 이외의 것에 대하여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의 선전이자 도구로서 예술적 수단이 이용되는 것을 '정치의 예술화'라고 한다. 억압적인 정치체제일수록 정치의 예술화는 보다 효과적인 대중장악과 통치기반의 정당화를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군사독재 시절 세워졌던 우리의 공공 조각품들이 나치 시대의 인물표현과 상당히 닮아있는 것은 우연한 일치에 불과한 것일까.

/ 신혜경(인문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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