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마리 돌다 나와바리에서 도꾸다이 했어.”
“밀운불우(密雲不雨), 상화하택(上火下澤), 당동벌이(黨同伐異)…”*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한국 언론이 사용하는 한글 이야기이다. 첫 번째 문장에서 ‘사스마리’의 경우는 경찰서를 돌며 사건을 취재하는 것을 의미하고, ‘나와바리’는 일본 폭력배들의 세력권을 뜻하는 ‘구역’을, ‘도꾸다이’는 특종을 각각 나타내는 일본어들이다. 굳이 풀어보자면, 경찰 기자로서 자신이 맡은 구역을 돌다가 특종을 건져 기사화했다는 내용이다. 지금도 사회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하게 쓰여지고 있는 용어들로 여타 분야에서의 전문 용어 및 외래어 사용을 나무라는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사실, 전문용어와 외래어의 사용은 언론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건축 현장, 법정, 병원 등 일반인들과의 물리적, 정서적 거리가 만만찮은 전문 현장에서는 지금도 국어 아닌 국어들이 버젓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대중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할 그 같은 용어들은 결국 판사와 피해자, 의사와 환자,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간극(間隙)만 벌릴 뿐이다. 때문에, 일반 독자를 고려하고자 하는 글쓴이는 결코 전문적이거나 생소한 전문용어와 외래어들을 동원해선 안 된다. ‘염좌’라는 낱말 대신 ‘삐다,’ ‘시구하다’란 표현 대신, ‘쑥뜸을 들이다’라는 뜻풀이는 그래서 더더욱 중요하다.

그러고 보니, 필자는 언젠가 어느 지하 보도 입구에 써있던 ‘통로 암거 이용’이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한자마저 없어 알쏭달쏭하기만 했던 그 말은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한글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취해야 할 단어들은 중학생 정도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친근해야 한다. 하지만, 말이 쉬워 친숙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지 그게 결코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때문에, ‘니치(niche) 마켓’이라고 말하기보다 ‘틈새시장’이라고 표현하고, “녹차를 음용한 후 숙면을 취한다”라고 표기하기보다 “녹차를 마신 후 잠을 푹 자야 한다”라고 쓰는 습관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연말만 되면 어김없이 ‘교수 신문’에 등장하는 ‘밀운불우’(密雲不雨), ‘상화하택’(上火下澤), ‘당동벌이’(黨同伐異)와 같은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들과 그것들을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신문사는 적어도 필자의 기준에선 철퇴를 받아 마땅하다.

그래도 꼭 한 번 어려운 용어를 써서 자신의 박식함을 알리거나, 상대방의 기를 누르고자 한다면? 본인 역시, 일상생활에서 아래와 같은 글들이 넘쳐 흐르는 것을 용인하면 된다.

=>“본 시설물은 산불방지를 위하여 설치한 산불감시 시스템입니다. 누구든지 허가없이 본 시설물을 손괴, 오손, 이전할 시에는 산림법에 의거 처벌을 받게 됩니다.” (관악산 자락의 어느 산불 감시탑에 설치된 경고문)

=>“침엽수림은 활엽수림보다 단위 면적당 잎의 면적 합계가 많아 수관 차단 및 증산에 의한 물 손실량이 월등히 많습니다.” (어느 수목원 입구에 붙어 있던 계몽 포스터)

*‘교수신문’이 2006, 2005, 2004년에 각각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들. 참고로 2002년의 사자성어는 ‘이합집산’(離合集散), 2003년은 ‘우왕좌왕’(右往左往)이었다.

참고 문헌
배상복 (2005). 「문장기술」. 랜덤하우스중앙.
임재춘 (2004).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 마이넌.
장유진 (2005.8.10). ‘해방 60년 생활 속의 일본.’ 내일신문.
탁석산 (2005).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 김영사.
황소웅 (2005). 「바른 글 좋은 글」. 랜덤하우스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