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의 저항성을 말하기 전에 ‘영화인이 문화의 진보성을 말하는 강연에 초대받았다’고 볼 수 있는 90년대 특수성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문화의 진보성이라는 말은 70년대 처음 논의가 시작됐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탈춤이나 민요를 중심으로 문화적 담론이 형성됐고
80년대에도 그림운동, 무용, 출판 등이 문화의 큰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광주항쟁이나 6월항쟁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에 관한
영화들이 존재할 여건이 당시에는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6월항쟁이나 광주항쟁에 관한 필름들은 그 당시 외신기자들의 작품들이고 그때에는
요즘처럼 영화가 정치적인 부분이나 사회적인 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지 않았다.
90년대 들어와서는 영화가 매우 중요한 문화활동으로 손꼽히게 됐다. 그 이유는 영화가 실천력과 상관없이 대중에게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성근씨가 영화를 시작한 이유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그동안 연극을 해오던 문씨는 광주항쟁을 그린 영화 『오
꿈의 나라』가 훌륭한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가 출현해 온 어떤 연극보다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여기에
자극을 받고 영화라는 매체의 특수성을 그 영화로 인해 깨달을 수 있었다.
문화가 왜 당대에 중요한가? 문화는 시대의 상을 이끌어 가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요즘 국가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 ‘매국노’라고 또 ‘조국을 배신한 행위’라고들 말한다. 관객에게 『타이타닉』은 단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작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 엄청난 제작비가 든 영화일 뿐이지만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이 영화는 영화의 내용과 상관없이 아주 정치적인 영화가
됐다.
문화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체성이 획득된다. 문화는 스스로 운동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문화가 스스로 변태해 버리는 것이다. 또 앞에서 예로 들었던 『타이타닉』으로 문화가 얼마나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종속적인지 잘 알 수 있다.
문화는 스스로 진보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환경에 종속되는 순간 변태되어지는 것이다. 즉 문화의 진보성을 정의하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사회를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또 문화의 진보성은 정치적·역사적 진보성과 다르다. 문화는 당대의 사회에 종속적이기 때문에 연속적일 수 없다. 문화의 당대적인
진보성은 당대의 급진성을 말한다. 급진성은 진보성과 달리 합법칙성을 띠지도 않고 당대적이지도 않다. 급진성은 표면적으로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 예로 60년대 미국의 히피문화가 이것을 잘 드러내 준다. 히피문화는 그 당시에 머리를 기르고 마리화나를 피며 사회체제에 반항하던
세력들을 말한다. 그들의 문화로 머리를 기르는 것은 반항의 의미였다. 그래서 요즘 머리를 기르는 것과는 다른 문화적 의미를 가지며 그 당시
평화를 부르짖던 자신의 뜻을 표현한 문화적 활동이었다. 즉 문화는 실천행위일 뿐이다. 문화의 저항성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또 문화는 교육이다. 문화는 사람들에게 그 문화가 띠는 성향을 강조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그 성향들이
유입된다. 영화 속의 내용이 거짓일지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히틀러가 이 점을 악용해 게르만인을 찬양한 영화를 만들어 배급해
전세계를 전쟁터로 만들었다. 영화는 최고의 교육행위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만들려면 자본과 기술, 또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권력자에 의해 제작되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헐리우드 영화와 더불어 우리나라 영화도 재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헐리우드에서 인디영화, 즉 독립영화라고 불리어질 수 있는 기준은 영화의 편집권이다. 헐리우드에서 영화의 편집권을 가지고 있는
감독은 우디 알렌 정도이며 『타이타닉』을 찍은 카메론 감독이나 스필버그 감독도 자신이 만든 영화의 편집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 감독은
누구나 자신이 만든 영화의 편집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구분 기준은 자본에 있다. 『세친구』의 임순례 감독이나 『강원도의
힘』의 박철수 감독도 독림영화 감독으로 알려져 있으나 모두 큰 기업들의 지원으로 영화를 제작해 왔다.
이런 이유들로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반영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영화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의도적으로 제작된 현실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작가 마광수씨가 검열로 인해 구속됐고 독립영화제작사인 ‘푸른영상’의 대표가 불법 영화배급으로
구속됐다. 그 이유는 한국사회 문화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문화는 당대적으로 급진적이어서 검열을 당하게 된다. 문화를 탄압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문화가 당대적인 급진성을 끊임없이 발현하기 때문이다.
문화가 진정으로 저항성을 가지려면 어떠한 현실이나 방식이라도 인정해야 한다. 당대적인 진보성을 획득하려면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 또 영화의 내용이 진보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의 형식도 진보적이어야 한다. 『파업전야』와 같은 영화는 내용은 매우 진보적이지만
형식은 매우 진부하다.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영화의 형식이 진보성을 가질 수 있고 또 문화의 진정한 진보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 이민정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