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뉴스 > 학술 |
|
[글짱] '약'도 되고 '독'도 되는 한자라틴어는 영어의 52%, 한자어는 국어의 60% 조어, 사자성어 생소한 단어엔 한자 병기해야 |
|
1945년, 서울역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국어 ‘큰 사전’을 발견한 것은 한글 창제 이후, 국문학계가 겪은 사상 최대의 사건이었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사그라져 가는 민족 정기를 되살린다는 사명감으로 이극로, 최현배, 김희승 등 기라성 같은 국문학자들이 목숨을 걸다시피 해가며 어렵사리 만들어 나갔지만, 일제 말기 어수선한 틈바구니 속에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당시, 국어 ‘큰 사전’은 지금의 기준으로 봐도 입이 쩍 벌어지는 16만4천123개의 어휘를 수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십 수년간 보상 한 푼 없이 오로지 애국심으로 사전을 구축(構築)해온 국문학자들의 노고(勞苦)가 물거품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된 국어 큰 사전은 자칫, 영원히 사장될 뻔 했던 우리말들이 다시 한겨레의 품 속으로 돌아오게 된 것을 의미했다.
그런 국어 ‘큰 사전’의 어휘 가운데에서도 순수 국어가 차지했던 비중은 절반에못 미치는 40% 정도였으며, 나머지는 대부분이 한자어였다. 영어의 어휘에서 라틴어 계통이 52% 정도를 차지하는 것에 미뤄볼 때, 한자가 우리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라틴어 이상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국어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1천년 이상 기록 수단이자 의사 전달 수단으로 사용된 한자는 이미 우리말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해서, 제아무리 시대가 한글 전용으로 바뀌는 추세라지만 한자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우리말의 역사인 셈이다. 오늘의 주제는 따라서 자칫 혼동을 불러 일으킬 한자어를 써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한자를 함께 제시를 해 줘야 경우에 대한 이야기다.
「공자, 노자, 석갯라는 책이 있다. 일본의 석학으로 추앙 받는 모로하시 데쓰지라는 학자가 쓴 책이다. 하지만, 일전에 어느 도서 소개란에서 ‘「공자, 노자, 석갯를 쓴 백수 이야기’로 소개돼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니, 내용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지은이를 직업도 없는 백수(伯嫂)로 착각할 수 밖에 없었을 터. 그렇지만, 모로하시 데쓰지가 100세에 책을 썼다는 의미에서 백수(白壽)로 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한자(漢字)만 곁들여 주었어도 불필요한 오해는 피할 수 있었건만 필요 이상으로 한자를 배격하다 발생한 촌극(寸劇)이었다.
사실 한자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적절히 사용하면 약(藥)이 되지만, 남용하면 독(毒)이 되는 약초라고나 할까? 그런 한자는 분명, 애매모호하거나 조어(造語)한 단어의 경우, 뜻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예를 들어, "그녀는 성녀(性女)인가, 성녀(聖女)인가?"에서와 같이 그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한자를 곁들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느 경우에 한자를 병행해 표기해 주는 것이 좋을까? 두말할 필요 없이 독자가 자칫 오해할 우려가 있거나 (앞에서 예시한 ‘백수’의 경우처럼)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단어 또는 지은이 자신이 조어(造語)한 단어가 그 예에 속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단어의 대표적인 예로는 사자성어(四字成語)를 꼽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의 경우를 보자.
중국에서는 의료 사고가 나도 병원은 오불관언이다.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썼지만 한자를 병기하지 않았기에 오불관언이란 성어를 모른다면 그야말로 우이독경인 셈이다. 그렇다면, 다음은?
중국에서는 의료 사고가 나도 병원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비록, 정확한 뜻은 모른다 해도 불관(不關)이란 한자어를 통해, 대충 "관계없다"고 시치미 떼는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때문에, 우리말 표기의 상당수가 여전히 한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면, 위와 같은 현상은 당연히 지양(止揚)돼야 한다. 비록, 너무 많은 한자를 강제적으로 교육시킬 필요는 없다손 치더라도 최소한의 한자 교육이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때 한자교육 폐지론을 앞세우며 한자 교과서를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없앤 어느 정치인 덕분에 많은 수의 학생들이 지금도 ‘공산주의’의 ‘공’자가 ‘공’(共)자인지 ‘공’(公)자인지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쯤에서 필자가 좋아하는 상황 퀴즈 하나. 위의 글에서는 역시 한자를 챙겨줘야 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찾아보고 정답까지 한 번 써보면서 자신의 한자 실력을 점검하기 바란다.
참고 문헌
이기문 (1980). 「당신의 우리말 실력은? 」. 리더스 다이제스트.
장진한, 후타쓰기 고조 (2003). 「글쓰기 잘라서 읽으면 단숨에 통달한다」. 행담.
최경봉 (2005). 「우리말의 탄생 」. 책과함께.
정답: 우이독경(牛耳讀經) |
| <저작권자 © 한림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