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민주화 운동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대중의 힘으로 정부 권력을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이는 이승만의 개인적 통치로 시들어 가던 한국의 민주주의를 되살렸고, 이후 독재 권력 앞에서 민주화 투쟁을 끊임없이 지속시킨 중요한 정신적 원동력이며 정치적 토대가 됐다.

  그러나 이 운동은 동시에 중요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우선 기성 세력이 아니라 학생이 주도했다는 데서 근본적인 한계를 지녔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당시 학생 이외에는 어떠한 민간 세력도 이승만 정권을 타도할 힘을 가지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당시 한국의 정칟사회적 성숙도가 낮았다는 말이다.

  이를 대체할 정치세력은 크게 미흡해 이 정권 붕괴 후의 권력 공백을 메꾸거나 거세어진 학생·시민 세력들의 정칟사회적 요구들을 수용할 능력이 없었다.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정권이 무너진 뒤 이를 수습할 위치에 있지 못했다. 그들은 정권 타도 이후의 새로운 정치 질서에 대해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 못했다.

  시위는 즉흥적이었고 돌발적이었고 비체계적, 비조직적이었다. 학생들의 목표는 처음에는 ‘학원 자유’ 및 ‘부패와 독재의 배격’이었다가, 이후 정부의 강경대응에 자극받아 ‘부정 선거 배격’, ‘정권 퇴진’ 등의 보다 정치적인 구호로 발전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 정권 하야 전의 학생 목표는 현정권의 모순에 대한 반대의 표명이었다. 어디에도 새로운 질서를 구상하거나 이를 주장한 흔적이 없다. 따라서 이 정권 퇴진이라는 정치적 사건도 사실은 학생이나 일반 시민의 데모대가 애당초 의도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의 진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종의 혁명적 분위기가 창출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학생이든 주변계층이든 중산층이든 이정권 사퇴라는 기대보다 엄천난 정치적 사태 앞에서 그 다음의 질서를 구상할 능력도 준비도 없었다. 이러한 힘의 공백에서 당시 최대 야당이던 민주당이 정권을 인수한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은 이승만의 하야로 조성된 일종의 혁명적 분위기와 이로 인한 대중 욕구의 분출을 수습하거나 주도할 능력이 없었다.

  이렇게 볼 때, 4·19의 주도세력이 이승만 하야 전후에 신체제 건설을 위한 사회혁명이나 정치혁명을 시도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를 뒷받침할만한 이념적 토대도 없었고, 조직적 기반도 없었으며, 정치적 지도세력도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4·19는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봉기였다고 할 수도 있으나, 오히려 독재와 부패에 반대한 봉기였다고 하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깝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4·19의 역사적 의미가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시민사회가 미성숙하고 국가의 억압이 높았던 상황에서 부패한 정권을 쓰러뜨릴 수 있는 시민의 힘을 결집했던 것은 그 자체로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수립과 동시에 이승만 정권이 도입했으나 실천하지 않은 자유민주주의적 이상에로의 복귀를 시도한 정치적 사건이었고, 한민족의 역사상 국민 대중이 통치 권력을 쓰러뜨린 최초의 사건으로서 심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독재와 반독재의 싸움이 4·19운동을 계기로 본격화되었고, 이는 이후 민주화 투쟁의 구심점이 되었다. 4·19의 역사적 의미도 이런 점에서 일차적으로 찾아져야 할 것이다.

/ 김영명(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