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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하루] 가재미, 스트랜딩 증후군
김원국 작가  |  diedl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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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11.25  20: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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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스트랜딩 증후군
                                김초영

파일럿 고래들이
피아노의 검은 건반처럼 일렬로 누워 있다
그들은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다

중앙병원 307호실,
누워 있는 엄마의 팔뚝에 옅은 햇빛이 스며든다.
오늘도 멍이 하나 더 늘었다
의사는 건조한 표정으로 엄마의 굳어가는
관절들을 만져보곤 했다
스스로 돌아오려 하지 않는 겁니다
일종의 무의식 상태의 자살이죠
의사는 녹음테이프를 재생하듯 또박또박 말한다
녹색 페인트칠이 벗겨진 산소통이
조용한 병실의 오후를 조금씩 갉아 먹고 있다

결국 대부분의 고래떼는 죽고 말았다, 고 보도되었다
중장비를 동원해 바다로 돌려보내는 작업을
감행했지만 전부 살려 내지는 못했단다
파일럿 고래들은 하늘로 날려던 것이었을까
자살하기 위해 육지까지 올라온 고래들처럼
엄마가 가는 물줄기를 내뿜는다
밀린 병원비가 불어나듯
투명한 오줌비닐이 노랗게 부풀어 올랐다
신문에 죽어 있는 고래들의 사진이 실렸다
죽은 고래들의 미약한 주파수가 좁은
병실 안을 맴돌다 사라진다
엄마도 저 주파수를 좇아 육지로 가고 있을지 몰라
흑백의 고래 사진을 오려 엄마의 머리맡에 붙여두었다
고래의 순한 눈이 감기고 있다
눈알이 오랫동안 따끔거렸다

* 2006년 11월 10일 뉴질랜드 오클랜드 북부 루아카카 해안가에서 고래들 77마리가 ‘집단 자살’을 했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내지 못했지만 고래들은 자신들의 생명이 휘험하다고 인식하거나 폐렴에 걸렸을 경우에 육지로 올라와 자살한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스트랜딩 증후군’이라고 한다.

지금 이 지면 위에 세 명의 남자가 있다. 문태준 시인, 김초영 시인, 그리고 나. 우리 셋의 공통점은 모두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했거나 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김천의료원 302호에서, 중앙병원 307호에서, 그리고 서울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묘하게도 두 시인이 죽어가는 어머니로부터 바다생명을 본다. 가재미와 고래.
그러면 나는 어땠을까? 나는 딱히 무엇도 보지 못했고, 그래서 시도 쓰지 못했다.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다. 때문에 이것을 묵묵히 감내하며 지켜 본 사람과 나처럼 도망치고, 눈 감았던 사람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세 남자의 어머니들이 저승에서 만나 얘기를 할 때, 다른 어머니들이 “우리 아들은 나를 가재미로 보더라우”, “우리 아들은 나를 고래로 보았지”, 라고 떠들더라도 우리 어머니는 한 마디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죽어서도 말 한 마디 할 수 없을 것이다.

/ 김원국(시인ㆍ국문학과 05년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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