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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짱] ‘감정이입을 줄여라’일반 생활을 점령한 ‘감정’표현, 글에서는 최대한으로 자제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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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感情)들이 넘쳐난다. 기쁨과 슬픔, 노여움과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이모티콘들이 스크린과 모니터, 액정 화면을 점령하고 있다. 어느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런 희로애락(喜怒哀樂) 이모티콘만 5백여 종에 달한다니 가히 ‘감정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과거, 외국인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지적했던 한국인들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못해 화가 나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는데, 적어도 TV와 모니터, 휴대폰에서 그러한 말들은 이제 까마득한 옛말이 됐다.
문제는 이모티콘을 통해 발현되는 감정이입(感情移入)이 적어도 글짱을 지향하는 이들에겐 지양(止揚)돼야 할 대상이라는 점이다. 보고서가 됐든, 수필이 됐든, 일단 사적인 글이 아닌 다음에는 감정을 제거해야 좋은 글이 된다는 것이다.
한때, 토론 프로그램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난 적이 있었다. 그런 프로그램들에 등장하는 출연자들 사이에는 부지불식간에 넘어서는 안 되는 마지노선이 있었다. “상대가 아무리 도발한다 해도 흥분하지 말 것.” 실제로, 상대방의 약점을 자극하는 도발 행위에 말려들어가 감정을 폭발시키는 쪽은 백발백중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게 마련이었다. 반면, 감정적인 도발에도 아랑곳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쪽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이성적이고도 객관적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강하게 심어주곤 했다. 요(要)는 글쓰기도 그렇다는 것이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예를 들어 다음 글을 보자.
… 노촌 (이구영) 선생님으로부터 내가 배우고 깨달은 것이 동양고전에 국한된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생각하면 노촌 선생님과 한방에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바깥에 있었더라면 도저히 얻을 수 없는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지요. 노촌 선생님의 삶은 어쩌면 우리의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조선 봉건 사회, 일제 식민지 사회, 전쟁, 북한 사회주의 사회, 20여 년의 감옥 사회 그리고 1980년대 이후의 자본주의 사회를 두루 살아오신 분입니다. 한 개인의 삶에 그 시대의 양이 얼마만큼 들어가 있는가 하는 것이 그 삶의 정직성을 판별하는 기준이라고 한다면 노촌 선생님의 삶은 어느 것 하나 당대의 절절한 애환이 깃들어 있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 중의 한 가지를 예로 들자면 노촌 선생님을 검거한 형사가 일제 때 노촌 선생님을 검거했던 바로 그 형사였다는 사실이지요.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친일파들이 오히려 반민특위를 역습하여 해체시켰던 해방 정국의 실상을 이보다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도 없지요.
신영복 선생의 「나의 동양 고전 독법: 강의」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1968년의 통일 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받았다가 지난 1988년 특별 가석방된 그는 현재 최고의 동양 고전 해설가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책 서문에서 밝히는 윗글의 마지막 두 문장은 자신의 스승이 당한 일을 어떤 감정적 개입 없이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두 문장을 다음처럼 옮겨 놓을 경우의 글맛은?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어떻게 한 형사가 일제 시대와 해방 전후를 거쳐 독립 운동가였던 공산주의자를 체포할 수 있습니까? 역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해방 초기의 한국의 부조리, 불합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친일파들이 여전히 활개쳤던 해방 정국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우리 역사의 치부였습니다.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상대방의 동의를 잘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5분 안에 YES를 얻어내는 설득술」의 저자, 니시무라 아키라는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형용사’에 중독되지 말라고 조언한 바 있다. 스스로 감격에 겨운 나머지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훌륭하다,” “맛있다,” “좋다,” “안타깝다,” “애석하다” 따위의 단어들은 최대한 자제하라는 의미에서였다. 그러고 보면, ‘일전에 피해야 할 단어들, 취해야 할 단어들’에서도 필자가 일관되게 강조한 것은 바로 “자신을 감추고 주관(主觀)을 객관(客觀)으로 포장하라”는 것이었다.
잊지 말자. 판단은 독자가 하기에 글쓴이는 사실만 전달하면 된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감정적인 글쓰기는 이제 자신의 일기장에만 남겨두도록 하자.
참고 문헌
니시무라 아키라 지음, 최정윤 옮김 (2001). 「5분 안에 YES를 얻어내는 설득술」.
이손.
신영복 (2004). 「나의 동양 고전 독법: 강의」. 돌베개.
조소연 (2002.5.6). ‘캐릭터를 스타로 키운다.’ 매일경제신문.
용어 풀이
*우후죽순(雨後竹筍): 비가 온 뒤에 여기저기 솟는 죽순이란 뜻으로, 어떤 일이 한때에 많이 생겨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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