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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프랑스에서 ‘68년 5월 혁명’이 일어난 지 꼭 30년 되는 해이다.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4·3 항쟁도 50년이
지나도록 진상 조사조차 못하는 형편에 남의 나라 일을 기억할 만큼 한가하냐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IMF 한파에 대량 실업에 내 코가
석자인데 “웬 68년?”하고 물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68년 5월 혁명’은 단지 프랑스만의 사건도 아니고, 흘러간 과거지사만도 아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월러스틴(I. Wallerstein)은 ‘68년 5월 혁명’을 가리켜 1848년 혁명에 이은 두 번째의 ‘세계혁명’이라고 한 바
있는데, 이는 단지 혁명의 물결이 프랑스를 넘어 서독, 이탈리아, 미국, 일본 등지로 확산됐다는 지리적 특성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68년 혁명’을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이후의 자본주의 세계의 발전과 ‘반체제운동’의 특징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우리 나라 역시 예외일 수가 없다.
‘68년 5월 혁명’은 단지 바다 건너 먼 나라의 과거지사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이론적 현실을
규정하면서 엄연히 살아 있는 것이다. ‘68년 5월 혁명’은 사실 대단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건에서부터 시작한다. 1968년 3월22일, 파리
근교에 있는 소르본느 대학의 낭트 분교. 6백여명의 학생들이 동료 학생들의 구속과 대학 당국의 권위주의적인 행정에 항의하며 강의실과 대학본부
건물을 점거하고 철야 농성에 들어갔다. 우리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대학생들의 시위였다. 당시 어느 누구도 파리 교외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이 학생들의 시위를 눈여겨봤던 사람은 없었으며, 따라서 이 사건이 그토록 거대한 역사적 사건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짐작한
사람은 더군다나 없었다.
그러나 ‘3월22일 운동’은 대학 당국의 경찰 투입 요청, 대학 폐쇄, 소르본느 본교 대학생들의 시위로 들불처럼 번지더니
5월에 들어서는 파리 시내에서 수만 명의 대학생들이 바리케이드전을 벌이고, 급기야 5월 14일에는 천만 명의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벌이는 혁명적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됐다. 처음에는 단지 소수 학생들의 시위에서 시작했으나, 혁명이 무르익으면서 고등학생, 교원, 노동자 등 수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시위에 가세했고, 또한 불과 1∼2개월만에 극좌 모험주의자들로부터 마오주의자들,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좌파 그룹들, 그리고
프랑스 공산당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정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색채를 드러냈다. 이것이 ‘68년 5월 혁명’이었다.
혁명을 권력의 교체라는 협소한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68년 5월 혁명’은 물론 실패한 혁명이다. 당시 운동을 주도했던 정파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권력을 장악할 만한 능력도 의사도 없었다. 좌파 가운데 그럴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마도 공산당(P.C.F.)
정도였겠지만, ‘평화적인 의회 전술’을 지향하고 있던 공산당은 ‘68년 5월 혁명’에 대해 시종일관 소극적이었으며, 심지어는 적대적이기조차
했다. 이에 따라 공산당의 지도를 받고 있던 ‘공산주의 학생연합(U.E.C.)’과 ‘노동조합 총연맹(C.G.T.)’ 역시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으며, 마침내 드골이 국민투표를 제안하자 혁명 운동은 시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혁명을 단순히 권력의 교체라는 협소한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68년 5월 혁명’은 다음 몇 가지 이유에서
그야말로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로, ‘68년 5월 혁명’을 기점으로 소비에트식의 당 모델은 더
이상 좌파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프랑스 공산당이 혁명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을 단지 잘못된 전술이나 실천적 무능력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었다. 프랑스 공산당의 태도 이면에는 뿌리깊은 관료주의가 숨어 있었으며, 이러한 관료주의는 민주집중제라는 레닌주의적인 당
모델을 고수하는 한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둘째로, ‘68년 5월 혁명’ 이전까지 혁명 운동은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한 운동이었으며, 다른 모든 운동들은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이라는 원칙에 배치되고 있었다. 그러한 전통적 혁명 운동의 절정이 아마도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68년 혁명’을 기점으로 노동운동 뿐 아니라 학생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 환경운동, 동성애 운동 등 다양한 소수자들의 운동이 발전하였다.
더군다나 각각의 운동은 더 이상 노동자계급 운동의 보완물도 아니고, ‘쁘띠부르주아’ 운동도 아니었다. 오히려 ‘당적 통일’과 같은 허구적이고
초월적인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운동의 고유한 차이와 특이성(singularity)을 존중하는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셋째로, ‘68년 5월 혁명’을 기점으로 새롭고 다양한 좌파 이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맑스로부터 시작하여
소비에트에 이르는 공식적인 맑스주의 이론이 주로 역사발전의 합법칙성과 계급의식의 문제를 주된 이론적 전제들로 삼고 있었다면, 이제 역사발전의
합법칙성 보다는 ‘우발성’을, 통일된 계급의식 보다는 각각의 고유한 ‘차이’와 그러한 차이를 규정하는 ‘욕망’에 대해서 보다 많은 관심이
기울여지게 된 것이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급속히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푸코(M. Foucault)나 들뢰즈(G. Deleuze) 등과 같은
철학자들은 이런 점에서 ‘68년 5월 혁명’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략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에 우리 역시도 ‘68년 5월 혁명’과 같은 역사적 변혁을 거쳤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벌였다거나 거리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위를 벌였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위에서 말한 몇 가지의 역사적 변화를
거쳤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시간은 원래 그런 식으로 비동시대적인 법이다. 그렇다면 ‘68년 5월 혁명’이 일어난지 30년이 흐른 오늘, 당시
학생들의 열정과 행동을 배우는 것은 ‘68년 5월 혁명’에서 아주 조금 배우는 것이지만, 그것의 역사적 의의를 생각해보고 현실 속에서 자신의
문제로 전화시키는 것은 ‘68년 5월 혁명’으로부터 아주 많은 것들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이용주(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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