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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화두로 부여받고 필자는 한때나마 학생운동의 끄트머리를 잠시 차지했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왠지
모를 씁쓸함과 심각함에 휩싸이게 됐다. 글을 쓰면서 우선 들었던 궁금증은 한국의 학생운동만큼 근대 이후 형성된 사회세력 중에서 그 규모나
영향력을 보아도 중요한 위치를 점했던 세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학문세계에서 이뤄진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수준의 글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더우기 8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동일선상에서 이어져 온 학생운동세력들에 대한 접근은 더더욱 그러하다.
이런 이유는 아마도 학생운동에 대해 막연한 신뢰와 부채의식을 느끼는 경향과 학생운동하면 무시와 외면으로 치닫는 두 경향들이
빚은 결과인 것 같다. 이제는 더이상 학생운동이 다른 외부세계와 아무런 소통도 없이 자신들만의 외로운 성을 만들게 해서는 안된다. 학생운동의
최일선에 복무하는 학생들이나 학생운동에 애정과 관심을 지니고 있는 이들은 모두 상호간에 허물없는 대화를 진행해야 한다. 소위 학생운동 위기의
담론이 횡행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런 소통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소통의 부재는 비단 학생운동과 학생운동 외부의 문제만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바로 학생운동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
이는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한국한생운동의 양극을 이루고 있는 민족해방(NL)세력과 민중민주(PD)세력 사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운동세력과
소위 말하는 일반 학우대중들 그리고 NL과 PD로 대별되는 양대 세력들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정파들간의 소통의 부재는 이미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무지와 왜곡된 오해 그리고 불신으로만 점철돼 있는 현재의 상황과 구조는 학생운동을 더욱 어려운 구렁텅이로 내몰고
있다. 또한 학생회운동으로 대표되는 학생운동의 모습은 그들이 그렇게 비판해 마지않는 기성정치 혹은 부르주아 정치판과 전혀 다른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고 이런 모습들은 해가 갈수록 심해져만 가고 있다.
해마다 11월에 진행되는 각 학생회 선거는 학생운동의 오도된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당선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전투구의 모습, 학생운동의 표상과도 같은 순수한 열정과 정의감, 그리고 청년의 기상은 온데간데 없고 노회한 보수정치꾼들의
음습함만을 따라 배우고 있다. 서로에 대한 배제와 패권적인 힘겨루기로 나타나는 정파적 질서가 고스란히 재현되는 학생회구조는 개별 학교차원에서부터
한국대학총학생연합 이라는 전국적 구조까지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학생운동의 건강성을 나타내 주던 열띤 토론과 논쟁을 통한
운동방향설정은 과거의 것이 돼버리고 이제는 자신들이 속한 정파 상층부의 입장만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수준이 됐다.
이론과 사상 그리고 당면 정세와 전술에 대한 입장의 공개적인 충돌과 논쟁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며, 설혹 이루어진다 해도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보다는 감정섞인 상처주기에 바쁜 모습들이다. “민족모순이 더 중요하냐, 계급모순이 더 중요하냐, 민주정부수립이냐,
민중의 정치세력화냐” 등의 진검승부는 10년이 넘도록 진행돼 오는데도 별다른 진전은 없고, 아니 이제는 서로가 건드리는 것도 피곤해 하고 제대로
승부할 능력도 없어 보이면서 “학원자주냐, 학원자치냐, 통일광장이냐, 이클리지어 광장이냐, 저쪽은 무식해, 재들은 어용이야”같은 촉 없는 화살만
허공으로 날리고 있는 실정이다.
정파라는 공고한 성벽 안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굳게 닫혀진 지금의 질서로는 학생운동 위기라는 담론 자체도 합의가
안돼는 분위기이다. 그렇다고 정파라는 것을 학생운동 만병의 근원이라고 본질을 호도해서도 안된다. 문제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입장들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 가를 확실히 인지한 후 이러한 차이들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진지한 대화와 사상적 교류 속에서
서로간의 차이를 알고 인정하고 나서야 진정한 연대의 틀거리와 내용이 담겨 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NL과 PD에 적어도 각각 3-4개가 넘는 정파가 우후죽순처럼등장해 서로 자신들이야말로 학생운동의 적자라고 주장하며
활동하는 춘추전국시대에 이렇게 소통하고 차이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연대를 이루어 나가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서는 각자 제 갈 길을 가다가 차츰
소멸해 갈 것이 명약관화하다. 매스컴에 나오는 것처럼 전북총련을 중심으로 한 사람사랑NL, 새벽그룹, 그리고 21세기진보학생연합 계열의
학생회들이 한총련을 탈퇴하고 아예 딴살림을 차리고, 서울지역대학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PD그룹들은 지금까지의 한총련과는 다른 내용과 형식으로
새로운 학생회연대체를 건설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대구 영남대에서는 주류NL과 경인지역을 중심으로한 사람사랑NL학생회 주도로 한총련 대의원대회 개최가 시도되고 있다.
학생운동역사상 이보다 더 나쁠 때는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도 전대협이라는 협의체에서 한총련이라는 연합체로 발전한 학생회연대질서에서 이제는 사안별
연대가 가능한 협의체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처럼 말이다. 그리고 현재 학생운동이 관심을
갖고 있는 통일, 노동, 여성, 환경, 문화, 인권 등의 다양한 영역이 전체 운동질서에 자연스럽게 녹아 내릴 수 있는 구조도 필요할
것이다.
전세계 어디를 둘러보아도 가장 강력한 사회운동세력으로써 한국의 민주주의와 진보를 위해 최선두에서 헌신적으로 자신을
희생해 온 한국학생운동, 민족과 민중의 희망으로 자리잡아 온 학생운동이 지금 내적 외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하루빨리 정권의 부당한 탄압과
내부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한번 한국사회의 희망으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 짓밟혀도 절망하지 않고 민들레처럼 다시 피어나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반성하며 냉철하게 행동하는 학생운동의 힘, 그 힘을 믿는다.
/ 조태종(사회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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