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저 산 넘어 또 저 구름 밖
아라사*의 소문이 자주 들리는 곳.
나는 문득
가로수 스치는 저녁 바람 소리 속에서
여엄-염 송아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멈춰 선다.

                                                          김기림의 <향수>

수필가이자 문학 평론가이기도 한 김기림은 이 땅에 모더니즘을 소개한 최초의 시인이었다. 1936년에 발표된 그의 첫 시집, ‘기상도’는 당시 감상주의(感傷主義)에 빠져 있던 조선 시단(詩壇)에 과학적 합리주의를 선보임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몰고 왔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바다와 나비,’ ‘연륜,’ ‘길’ 등 지금도 인구에 널리 회자(膾炙)되고 있는 그의 시들은 기지 넘치는 감각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모더니즘 시학의 극치(極致)였다. 하지만, 그런 그가 작금의 기준에 비춰볼 때 ‘글꽝’이라면? 비유(比喩)와 은유(隱喩), 직유(直喩)와 대유*(代喩)가 생명인 시적 표현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글쓰기에서는 구축*(驅逐)해야 할 대상이라는 얘기다.

「한국인의 글쓰기」 ‘기초’ 편에서 ‘피카소는 글꽝’이라는 주제로 ‘묘사’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장면이나 모습이 구체적으로 떠오를 수 있도록 실사*(實寫)를 잘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번 장은 그 속편에 해당하는 ‘수치,’ 실례’(實例) 및 ‘비교’ 제시에 관한 글이다. ‘개념’이나 ‘행위’같이 묘사가 어려운 대상들은 예를 들어주거나, 다른 대상과의 비교를 통해 독자들이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사에 들어가서 글쓰기에 관한 기본기가 어느 정도 다져지기 시작하면 신경 써야 하는 분야가 있다. 이른바, 독자의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지도록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 같은 원칙은 특히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을 표현하고자 할 때 적극적으로 활용돼 해당 기자의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대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달라진 세법에 따라 연말 정산을 통해 돌려받는 세금의 규모가 바뀌게 됐다는 상황을 설명한다고 치자. 언론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결코, “세율이 종전의 15%에서 14%로 1% 포인트가 줄어들어, 총 3000억 원 정도가 국민들에게 다시 돌아간다”고만 기술하지 않는다. 반드시 예제를 통해 “연봉 5000만원의 김XX씨는 연말 정산을 통해 지난해에는 200만원을 돌려 받았지만, 올해에는 220만원을 돌려 받을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함으로써 독자가 정보를 피부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독자의 입장을 고려해 자신이 쓰는 글을 얼마나 쉽게 전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해서, “매년 10만 헥타르의 녹지가 사라지고 있다”고 표현하기보다 “여의도의 300배만한 녹지가 해마다 사라지고 있다”라고 풀이하거나 “500m 높이의 건축물”이라고 기술하기보다 “6•3 빌딩의 두 배 높이”라고 달리 설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속도에서부터 면적, 무게, 크기, 길이는 물론, 전문 용어나 생소한 문장에 대해 일반인들의 머릿속에 심어줄 대표적인 비교 개념을 떠올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세금 1조원이 더 걷혔다”라고 쓰고 끝내기보다 “이는 1000만 가구를 기준으로 놓고 볼 때, 한 집당 10만원씩 세금을 더 낸 셈이다”라고 한 줄 더 덧붙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의 저자, 임재춘은 몇몇 요령으로 1) 명백한 수치를 제시하거나 2) 실례를 들든지 3) 비교함으로써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우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기림의 ‘향수’는 적어도 ‘글짱’을 지향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다음과 같이 고쳐 써야 한다.

나의 고향은
적유령 산맥의 백산 넘어 약 10km 밖
볼셰비키 혁명 등에 대한 아라사*의 소문이 일주일에 서너 번은 들리는 곳.
나는 문득
가로수 스치는 저녁 바람 소리 속에서
여엄-염 송아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멈춰 선다.

*아라사(俄羅斯): 한자를 가지고 ‘러시아’의 음을 나타낸 말.